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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아침 전화 한 통 월요일 오전 9시 12분. 커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고객사 IT팀장이었다. "과장님, 서버 언제 들어와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이번 주 금요일 예정입니다." 견적서에 적힌 날짜를 말했다. "그거 지난주 금요일 아니었어요?" 심장이 덜컥했다.전화 끊고 바로 Lenovo 담당 PM한테 전화했다. 안 받았다. 카톡 날렸다. "납기 확인 부탁드립니다." 10분 뒤에 답장 왔다. "2주 지연 예상됩니다. 본사 재고 부족." 2주. 14일. 336시간. 고객사는 내일 서버 받아서 이번 주 안에 구축 끝내야 한다고 했다. 프로젝트 일정이 다 짜여 있었다. 구축 업체도 예약되어 있었다. 끝났다. 고객사 찾아간 오전 전화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직접 가기로 했다. 고객사는 여의도 빌딩 12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변명을 연습했다. "공급망 이슈로..." "글로벌 재고 상황이..." "최대한 빨리..." 다 헛소리처럼 들렸다. IT팀장실 앞에서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팀장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2주 늦는다고요?" "죄송합니다. 벤더 쪽 재고가..." "우리 프로젝트 일정은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구축 업체 일정 다시 잡아야 하고, 사용자 교육도 미뤄야 하고." 팀장이 말을 이었다. "경영진한테 뭐라고 보고해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최선은 이미 늦었어요." 침묵. "혹시 다른 벤더로 대체 가능한가요?" 칼 같은 질문이었다. Dell이나 HPE로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견적은 이미 승인됐고, 스펙도 확정됐다. 지금 바꾸면 더 늦어진다. "그게 오히려 시간이 더..." "그럼 방법이 뭐예요?"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죄송합니다. 매일 진행 상황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매일 전화 주세요. 꼭." 사무실 나올 때 등에서 땀이 났다. 12월인데. 벤더 미팅 오후 2시. Lenovo 담당 PM이랑 카페에서 만났다. "형, 이거 진짜 2주 걸려요?" "그렇다니까. 본사 재고가 없어." "급하게 못 빼나요?" PM이 한숨 쉬었다. "너만 급한 게 아니야. 다들 급해." 맞는 말이었다. 하드웨어 시장 전체가 공급 부족이었다. 반도체 이슈, 물류 이슈, 다 겹쳤다. "고객이 빡쳐서. 진짜 죽을 것 같아."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PM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딱 벤더 직원 표정. "혹시 다른 모델로 대체는?" "스펙 다르잖아. 고객이 OK 해?" "물어봐야겠네."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아메리카노. "형, 진짜 최대한 빨리 좀." "알았어. 근데 기대는 하지 마." 카페 나오면서 고객한테 전화했다. 대체 모델 제안하려고. "안 됩니다. 이미 스펙 확정됐어요." 전화 끊겼다.일주일의 지옥 그 다음 7일은 지옥이었다. 매일 아침 고객한테 전화했다. "오늘 납기 업데이트입니다." "변동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같은 말 반복. 고객 목소리는 날마다 차가워졌다. 매일 오후 벤더한테 전화했다. "진행 상황 어떻게 되나요?" "아직 본사 답 없어." "언제쯤 나와요?" "모르겠어. 기다려봐." 샌드위치였다. 고객한테 치이고, 벤더한테 치이고. 목요일엔 고객사 IT팀장이 우리 대표한테 전화했다. 대표가 나를 불렀다. "이거 왜 이래?" "재고 이슈입니다." "고객 화나셨어. 대책이 뭐야?" 대책이 없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제가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확인만 하지 말고 해결해." 어떻게 해결하라는 건지. 벤더 공장 가서 서버 만들어 올까. 금요일 저녁. 벤더한테서 연락 왔다. "다음 주 수요일 입고 확정." "확실해요?" "확실해. 본사에서 급하게 빼줬대." 심장이 뛰었다. 바로 고객한테 전화했다. "팀장님, 다음 주 수요일 확정입니다." "진짜요?" "네, 벤더에서 최종 확인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전화 끊고 나서 한숨 쉬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납품 당일 수요일 오전 10시. 화물차가 고객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도 현장에 갔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박스 8개. Lenovo ThinkSystem SR650. 전부 시리얼 넘버 확인했다. 고객사 IT팀장도 내려왔다. "도착했네요." "네. 죄송합니다. 늦어서."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화는 풀린 것 같았다. "구축은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네.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악수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장 나오면서 담배 한 대 피웠다. 담배 안 피우는데. 그날은 필요했다. 사후 처리 다음 날 고객사 방문했다. 구축 진행 상황 확인하러. 서버룸에 서버들이 랙에 들어가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이 케이블 연결하고 있었다. IT팀장이 옆에 왔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끝났네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음부턴 납기 여유 좀 두고 주문합시다." "네. 꼭 그러겠습니다." 팀장이 웃었다. 처음 보는 표情이었다. 사무실 돌아와서 PM한테 감사 전화했다. "형, 덕분에 살았어요. 밥 사야겠네." "다음에 더 큰 오더 넣어. 그게 밥이야."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였다. 벤더 관계도 결국 실적이었다. 대표한테 보고 올라갔다. "납품 완료했습니다." "고생했어. 다음엔 이런 일 없게." 월말 실적 회의. 이번 딜은 마진이 거의 없었다. 시간 대비 수익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고객을 잃지 않았다. 그게 더 중요했다. 교훈이랄 것도 없지만 하드웨어 영업 8년 하면서 배운 것. 납기는 절대 약속하지 마라. "예정"이라고 말해라. 벤더 말 100% 믿지 마라. 재고 확인은 두 번 해라. 고객한테 솔직해라. 변명보다 현황 공유가 낫다. 샌드위치 신세는 피할 수 없다. 영업의 숙명이다. 그래도 끝까지 책임져라. 그게 신뢰다. 지난주에 그 고객사에서 또 견적 요청이 들어왔다. 스토리지 추가 구매. 3000만원짜리. "과장님, 이번엔 납기 괜찮죠?" 전화에서 팀장이 물었다. "네. 재고 확인하고 답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견적 부탁드려요." 전화 끊고 벤더한테 바로 전화했다. "재고 있어? 확실해?" 신뢰는 한 번 깨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두 번은 없다.납기 지연은 영업의 악몽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계를 결정한다. 변명보다 책임, 회피보다 소통. 그게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