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l 서버 가격을 30% 깎으라는 고객한테 한 말

Dell 서버 가격을 30% 깎으라는 고객한테 한 말

Dell 서버 가격을 30% 깎으라는 고객한테 한 말 월요일 오전, RFP가 떨어졌다 메일함을 열었다. 새로 들어온 RFP 하나.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Dell PowerEdge R750 서버 20대. 메모리 256GB, SSD 4TB, 3년 보증. 견적 요청서를 열었다. 예산란을 봤다. "시중 최저가 기준으로 협의 가능" 이 문구가 나오면 답이 없다는 걸 안다.담당자한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하드영업입니다." "아, 네. 견적 넣어주실 거죠?" "네, 그런데 예산이 얼마 정도로 생각하시나요?" "음... 대당 500만원 정도요?" 계산기를 두드렸다. Dell 공급가가 대당 650만원이다. 유통 마진 10%, VAT 포함하면 대당 715만원은 받아야 한다. 500만원은 원가보다 낮다. "담당자님, 500만원은 좀..." "다른 업체는 가능하다던데요?" "어느 업체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끊었다. 짜증났다. 경쟁사 전화가 왔다 점심시간이었다. 같은 업계 김 과장한테 전화가 왔다. "야, 너도 그 입찰 견적 넣냐?" "응, 근데 예산이 말이 안 돼." "맞아. 나도 봤는데 500 달라는 거 보고 웃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난 패스. 마진 0원이면 뭐하러 해." 김 과장은 현명했다. 나도 패스하고 싶었다. 근데 이번 분기 실적이 아직 70%였다.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이 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큰 건데?" "예산이 원가보다 낮습니다." "그럼 Dell한테 특가 요청해봐." "해봤는데 안 된답니다."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판단해. 근데 분기 실적은 알지?" 압박이었다. 고객사를 찾아갔다 다음날 오후, 고객사를 찾아갔다. 약속 없이 갔다. 담당자는 당황했다. "어, 갑자기 왜 오셨어요?"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노트북을 꺼냈다. 견적서를 보여줬다. "담당자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네?" "Dell R750 대당 500만원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업체는 가능하다는데요?" "그 업체가 거짓말하는 겁니다." 담당자 표정이 굳었다."Dell 공급가가 650만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화면에 Dell 공식 견적서를 띄웠다. "유통 마진 10%, VAT 10% 붙이면 715만원입니다." "그럼 저희 예산으로는 안 되는 거네요?" "정확합니다. 500만원 받으면 저희가 손해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수량을 줄인다. 20대가 아니라 14대. 둘째, 스펙을 낮춘다. 메모리 128GB로. 셋째, 예산을 올린다. 최소 대당 700만원. 담당자는 메모했다. "상사한테 보고해볼게요." "네, 연락 주세요." 나왔다. 떨렸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날아간다. 결과는 3일 뒤에 왔다 금요일 오후였다. 담당자한테 전화가 왔다. "과장님, 저희 상사가 예산 추가 승인받았습니다." "네? 진짜요?" "네, 대당 700만원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믿기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바로 견적 보내드리겠습니다." "과장님,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오히려 좋았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끊고 나서 한숨 쉬었다. 도박이었다. 이길 줄 몰랐다. 계산해봤다. 대당 700만원 × 20대 = 1억 4천만원. 마진은 약 1000만원. 인센티브로 300만원 정도 들어온다. 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Dell 건 클로징했습니다." "오, 진짜? 어떻게 했어?"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팀장은 웃었다. "그게 통하네. 신기하다." 신기한 게 아니다. 운이다. 술자리에서 나온 말 저녁에 팀원들이랑 술 마셨다. 후배 김 대리가 물었다. "형, 그 건 어떻게 따낸 거예요?" "솔직하게 말했어." "고객이 가격 깎으라는데 거절한 거예요?" "거절이 아니라 현실을 알려준 거지." "그래도 보통 안 되잖아요." 맞다. 보통은 안 된다. 열 번 하면 아홉 번은 경쟁사한테 날아간다.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다. "김 대리, 있잖아." "네?" "가격 깎아달라는 고객한테 무조건 깎아주면 어떻게 돼?" "마진이 없어지죠." "맞아. 그리고 고객도 우리를 무시하게 돼." "무시요?" "응. '이 업체는 말하면 깎아준다' 그렇게 생각하거든." 김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말했다. "가격은 가치야.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 "델 서버가 싸구려가 아니잖아. 성능 좋고, 안정적이고, AS 빠르고." "그걸 500만원에 팔면 그게 우리 가치가 되는 거지." "그럼 형은 항상 안 깎아요?" "아니. 깎을 수 있으면 깎아. 벤더가 특가 주면." "근데 원가보다 낮게는 못 받아. 우리도 먹고살아야지." 김 대리는 술잔을 들었다. "배웠습니다, 형." "배운 게 아니라 경험이야. 너도 겪어봐." 월요일, 계약서에 도장 찍었다 고객사에서 PO가 왔다. Purchase Order. 구매 발주서. 이게 와야 진짜 성사된 거다. Dell Korea 영업한테 연락했다. "김 부장님, PO 왔습니다." "오, 수고했어요. 특가는 못 드렸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냥 정가로 받았습니다." "대박. 요즘 그게 어디 쉬워요." 쉽지 않다. 나도 안다. 이번 건은 고객 담당자가 합리적이었다. 상사도 이해해줬고. 다 운이다. 계약서를 스캔해서 저장했다. CRM에 기록했다. "Dell R750 20대, 1억4천만원, 마진 1000만원" 이번 분기 실적이 85%가 됐다. 남은 15%는 다음 주에 클로징 예정인 NetApp 건으로 채운다. 분기 목표 달성 가능하다. 인센티브 계산해봤다. 분기 목표 100% 달성하면 500만원. 초과하면 추가로 더 붙는다. 이번 분기는 잘 될 것 같다. 깎아달라는 고객에게 이후로 비슷한 상황이 또 왔다. 금융권 고객. HPE 서버 견적 요청. "30% 할인 가능하세요?" 전화로 말했다. "담당자님, 30%는 불가능합니다." "왜요?" "HPE 공급가가 있습니다. 저희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 얼마까지 가능해요?" "10% 정도입니다. 그것도 벤더 승인받아야 합니다." "10%면 예산이 안 맞는데요." "그럼 수량을 조정하시거나, 예산을 조정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검토해볼게요." 이 건은 날아갔다. 경쟁사가 20% 할인해준다고 했단다. 아마 거짓말이거나, 마진 0원으로 따낸 거다. 상관없다. 마진 없는 딜은 안 한다. 우리 회사 방침이다. 나도 동의한다. 마진 0원으로 수주하면 뭐가 문제냐고? 첫째, 회사 이익이 없다. 둘째, 내 인센티브가 없다. 셋째, 문제 생기면 손해다. 납기 지연, 하자 발생, AS 요청. 이런 거 처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든다. 마진 없으면 적자다. 그래서 나는 이제 확실하게 말한다.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다른 업체 알아보세요." 한 달 뒤, 그 고객이 다시 연락했다 금융권 고객 담당자였다. "과장님, 저 기억하세요?" "네, 기억합니다." "저희 경쟁사랑 계약했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서버가 안 들어왔어요." "...네?" "계약하고 한 달 지났는데 연락이 없어요." "그 업체한테 뭐라고 하던가요?" "HPE 재고 없다고 하네요. 납기가 3개월 걸린대요." 웃음이 나왔다. 참았다. "그럼 어쩌시려고요?" "과장님, 아직 견적 가능하세요?" "가능은 한데, 가격은 전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견적 보내드리겠습니다." 끊고 나서 동료한테 말했다. "야, 지난번에 날아갔던 그 건 있잖아." "응, HPE?" "응. 다시 들어왔어." "헐, 진짜? 경쟁사가 말아먹었나?" "재고 없다고 거짓말한 것 같아." "에이, 설마." "근데 한 달 동안 연락 없었다잖아." 동료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업체들 때문에 우리까지 욕먹는 거야." 맞는 말이다. 나는 견적서를 다시 보냈다. 가격은 그대로. 10% 할인. 고객은 바로 PO를 보냈다. 가격을 깎지 않는 이유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원가보다 낮게는 못 받는다. 우리도 회사고, 이윤이 있어야 한다. 자선사업 아니다. 둘째, 마진 없으면 AS도 없다. 문제 생겼을 때 처리할 여력이 없다. 고객한테도 손해다. 셋째, 가격은 가치다. Dell 서버는 성능이 좋다. HPE는 안정적이다. NetApp는 속도가 빠르다. 그게 값어치다. 넷째, 장기적 관계. 한 번 헐값에 팔면 그게 기준이 된다. 다음에도 같은 가격 요구한다. 관계가 망가진다. 다섯째, 경쟁력. 우리가 제공하는 건 제품만이 아니다. 기술 지원, 빠른 납기, 정확한 정보. 이게 다 비용이다. 여섯째, 자존심. 영업도 전문가다. 고객이 깎으라고 해서 무조건 깎으면 우리가 뭐가 되냐. 선 긋는 게 필요하다. 그래도 어려운 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다. 고객이 "다른 데 알아볼게요" 하면 불안하다. 분기 실적 압박 있으면 더 그렇다. 팀장이 "왜 못 따왔어?"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마진이 없어서 안 했습니다" 해봤자 소용없다. 실적은 실적이니까. 그래도 나는 선을 긋는다. 원가 미만은 안 받는다. 마진 5% 이하는 안 한다. 이게 내 원칙이다. 이 원칙 지키다가 실적 못 채운 적 있다. 인센티브 못 받은 적 있다. 팀장한테 찍힌 적도 있다. 그래도 후회 안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맞는 길이다. 헐값에 팔았던 건들은 나중에 문제가 됐다. AS 비용, 재고 손실, 고객 클레임. 고객도 알아본다 재미있는 건 뭐냐면, 제대로 된 고객은 안다. 가격이 왜 이런지. 왜 못 깎아주는지. 그런 고객은 흥정 안 한다. 적정가 물어보고, 합리적이면 바로 계약한다. 장기 거래한다. 문제는 가격만 보는 고객이다. "1원이라도 싸게" 이런 마인드. 이런 고객은 나중에 문제가 많다. 납기 늦으면 난리, 스펙 조금 다르면 클레임. 나는 이제 고객을 고른다. "이 고객은 장기 거래 가능한가?" "합리적인 사람인가?" "문제 생겼을 때 이해해줄까?" 안 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패스한다. 시간 낭비 안 한다. 차라리 다른 고객 찾는다. 8년 하면서 배운 거다. 모든 고객을 다 상대할 필요 없다. 좋은 고객 몇 개만 있으면 된다. Dell 건 이후로 달라진 것 그 Dell 건 이후로 나는 확신이 생겼다. "가격을 안 깎아도 된다."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안 되면 안 된다고 해도 된다." 물론 다 통하는 건 아니다. 열에 하나 정도 통한다. 근데 그 하나가 크다. 요즘은 고객한테 이렇게 말한다. "담당자님, 제가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이 가격은 정가입니다. 못 깎습니다." "대신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이겁니다." 빠른 납기. 정확한 기술 지원. 문제 생겼을 때 즉각 대응. 3년 무상 AS. "가격은 못 깎는데, 서비스는 최고로 드립니다." "선택은 담당자님 몫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반응이 둘로 나뉜다. "그럼 다른 데 알아볼게요" 또는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하죠." 전자는 보내고, 후자랑 일한다. 깔끔하다. 이번 분기는 잘 마무리할 것 같다 지금 실적 95%. 남은 건 NetApp 스토리지 하나. 다음 주면 클로징 예상. 분기 목표 110% 달성 가능하다. 인센티브 700만원 정도 나온다. 올해 연봉 7000만원 넘는다. 집사람한테 말했다. "이번 분기 잘 될 것 같아." "오빠 요즘 표정 밝아진 거 같더라." "그래? 스트레스는 여전한데." "근데 뭔가 달라진 것 같아." "뭐가?" "예전엔 불안해 보였는데, 요즘은 확신 있어 보여." 맞는 말이다. 예전엔 고객 눈치 봤다. 가격 깎아달라면 어떡하나, 경쟁사한테 빼앗기면 어떡하나. 항상 불안했다. 요즘은 다르다. 내가 제공하는 가치를 안다. 그 가치에 맞는 가격을 받는다. 안 되면 다음 고객 찾는다. 이게 영업이다.30% 깎으라는 고객한테 "안 됩니다" 말한 게 인생 전환점이었다. 솔직함이 가끔은 통한다.

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납기가 밀려서 고객과 벤더 사이에서 찢어질 뻔한 날 아침 전화 한 통 월요일 오전 9시 12분. 커피 한 모금 마시기도 전에 전화가 왔다. 고객사 IT팀장이었다. "과장님, 서버 언제 들어와요?"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이번 주 금요일 예정입니다." 견적서에 적힌 날짜를 말했다. "그거 지난주 금요일 아니었어요?" 심장이 덜컥했다.전화 끊고 바로 Lenovo 담당 PM한테 전화했다. 안 받았다. 카톡 날렸다. "납기 확인 부탁드립니다." 10분 뒤에 답장 왔다. "2주 지연 예상됩니다. 본사 재고 부족." 2주. 14일. 336시간. 고객사는 내일 서버 받아서 이번 주 안에 구축 끝내야 한다고 했다. 프로젝트 일정이 다 짜여 있었다. 구축 업체도 예약되어 있었다. 끝났다. 고객사 찾아간 오전 전화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직접 가기로 했다. 고객사는 여의도 빌딩 12층. 엘리베이터 안에서 변명을 연습했다. "공급망 이슈로..." "글로벌 재고 상황이..." "최대한 빨리..." 다 헛소리처럼 들렸다. IT팀장실 앞에서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팀장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2주 늦는다고요?" "죄송합니다. 벤더 쪽 재고가..." "우리 프로젝트 일정은요?" 대답할 말이 없었다."구축 업체 일정 다시 잡아야 하고, 사용자 교육도 미뤄야 하고." 팀장이 말을 이었다. "경영진한테 뭐라고 보고해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최선은 이미 늦었어요." 침묵. "혹시 다른 벤더로 대체 가능한가요?" 칼 같은 질문이었다. Dell이나 HPE로 바꿀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견적은 이미 승인됐고, 스펙도 확정됐다. 지금 바꾸면 더 늦어진다. "그게 오히려 시간이 더..." "그럼 방법이 뭐예요?" 없었다. 기다리는 수밖에. "죄송합니다. 매일 진행 상황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매일 전화 주세요. 꼭." 사무실 나올 때 등에서 땀이 났다. 12월인데. 벤더 미팅 오후 2시. Lenovo 담당 PM이랑 카페에서 만났다. "형, 이거 진짜 2주 걸려요?" "그렇다니까. 본사 재고가 없어." "급하게 못 빼나요?" PM이 한숨 쉬었다. "너만 급한 게 아니야. 다들 급해." 맞는 말이었다. 하드웨어 시장 전체가 공급 부족이었다. 반도체 이슈, 물류 이슈, 다 겹쳤다. "고객이 빡쳐서. 진짜 죽을 것 같아."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PM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딱 벤더 직원 표정. "혹시 다른 모델로 대체는?" "스펙 다르잖아. 고객이 OK 해?" "물어봐야겠네."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아메리카노. "형, 진짜 최대한 빨리 좀." "알았어. 근데 기대는 하지 마." 카페 나오면서 고객한테 전화했다. 대체 모델 제안하려고. "안 됩니다. 이미 스펙 확정됐어요." 전화 끊겼다.일주일의 지옥 그 다음 7일은 지옥이었다. 매일 아침 고객한테 전화했다. "오늘 납기 업데이트입니다." "변동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같은 말 반복. 고객 목소리는 날마다 차가워졌다. 매일 오후 벤더한테 전화했다. "진행 상황 어떻게 되나요?" "아직 본사 답 없어." "언제쯤 나와요?" "모르겠어. 기다려봐." 샌드위치였다. 고객한테 치이고, 벤더한테 치이고. 목요일엔 고객사 IT팀장이 우리 대표한테 전화했다. 대표가 나를 불렀다. "이거 왜 이래?" "재고 이슈입니다." "고객 화나셨어. 대책이 뭐야?" 대책이 없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제가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확인만 하지 말고 해결해." 어떻게 해결하라는 건지. 벤더 공장 가서 서버 만들어 올까. 금요일 저녁. 벤더한테서 연락 왔다. "다음 주 수요일 입고 확정." "확실해요?" "확실해. 본사에서 급하게 빼줬대." 심장이 뛰었다. 바로 고객한테 전화했다. "팀장님, 다음 주 수요일 확정입니다." "진짜요?" "네, 벤더에서 최종 확인받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릴게요." 전화 끊고 나서 한숨 쉬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납품 당일 수요일 오전 10시. 화물차가 고객사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도 현장에 갔다. 직접 확인해야 했다. 박스 8개. Lenovo ThinkSystem SR650. 전부 시리얼 넘버 확인했다. 고객사 IT팀장도 내려왔다. "도착했네요." "네. 죄송합니다. 늦어서."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화는 풀린 것 같았다. "구축은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네.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악수했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현장 나오면서 담배 한 대 피웠다. 담배 안 피우는데. 그날은 필요했다. 사후 처리 다음 날 고객사 방문했다. 구축 진행 상황 확인하러. 서버룸에 서버들이 랙에 들어가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이 케이블 연결하고 있었다. IT팀장이 옆에 왔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어쨌든 끝났네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음부턴 납기 여유 좀 두고 주문합시다." "네. 꼭 그러겠습니다." 팀장이 웃었다. 처음 보는 표情이었다. 사무실 돌아와서 PM한테 감사 전화했다. "형, 덕분에 살았어요. 밥 사야겠네." "다음에 더 큰 오더 넣어. 그게 밥이야."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였다. 벤더 관계도 결국 실적이었다. 대표한테 보고 올라갔다. "납품 완료했습니다." "고생했어. 다음엔 이런 일 없게." 월말 실적 회의. 이번 딜은 마진이 거의 없었다. 시간 대비 수익이 형편없었다. 하지만 고객을 잃지 않았다. 그게 더 중요했다. 교훈이랄 것도 없지만 하드웨어 영업 8년 하면서 배운 것. 납기는 절대 약속하지 마라. "예정"이라고 말해라. 벤더 말 100% 믿지 마라. 재고 확인은 두 번 해라. 고객한테 솔직해라. 변명보다 현황 공유가 낫다. 샌드위치 신세는 피할 수 없다. 영업의 숙명이다. 그래도 끝까지 책임져라. 그게 신뢰다. 지난주에 그 고객사에서 또 견적 요청이 들어왔다. 스토리지 추가 구매. 3000만원짜리. "과장님, 이번엔 납기 괜찮죠?" 전화에서 팀장이 물었다. "네. 재고 확인하고 답드리겠습니다." "좋아요. 견적 부탁드려요." 전화 끊고 벤더한테 바로 전화했다. "재고 있어? 확실해?" 신뢰는 한 번 깨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두 번은 없다.납기 지연은 영업의 악몽이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계를 결정한다. 변명보다 책임, 회피보다 소통. 그게 다다.

분기 말 3일 전, 견적 10장이 동시에 들어온 날

분기 말 3일 전, 견적 10장이 동시에 들어온 날

분기 말 3일 전, 견적 10장이 동시에 들어온 날 오후 4시 47분. 메일 알림이 울렸다. 공공 섹터 담당 과장 채팅방에 "RFP 급건 들어왔습니다"라는 메시지. 그 다음 2분 뒤에 금융사 IT팀에서 전화. "견적 다시 부탁드립니다. 예산 조정되었어서요." 5분 뒤, 또 다른 고객사. "내일까지 초안 줄 수 있을까요?" 분기 말 3일 전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긴 한데, 진짜 동시에 터지는 날도 있다. 고객사들도 자기네 회계 연도 맞추려고 이 시점에 RFP 던지는 거고, 우리도 실적 인정받으려고 이 시점에 수주해야 하는 거다. 그 사이에서 영업사원은 밤샘을 한다.오후 5시, 재난 관리 시작 일단 들어온 건 뭔지 정리했다. 공공기관 A (시청): Dell 서버 2U 4대 + NetApp 스토리지 (마진 형편없음) 금융사 B (은행): HPE 서버 + Lenovo 계산 디바이스 (새로운 고객) 대형 마트 C: Cisco 네트워크 스위치 (이미 3번 견적 냈는데 또 내야 함) 제약회사 D: 전체 하드웨어 리프레시 (제일 큰 액수)오후 5시 30분, 과장실로 들어갔다. 실장과 이사 앞에서 우선순위 회의. 30초 만에 결정났다. 실적이 필요한 순서대로: 1순위: 제약회사 D (예상 수주액 3억 2천만 원) - 제약사들은 정책 바뀔 수 있으니 지금 당장. 2순위: 은행 B (예상 1억 8천만 원) - 신규 고객, 향후 반복 구매 가능성. 3순위: 시청 A (예상 9천만 원) - 공공이라 마진 안 나오긴 하는데 실적은 실적. 4순위: 마트 C (예상 4천만 원) - 낮은 마진, 이미 경쟁사가 치고 들어온 상태. 종이에 써가지고 팀원들 각각 배정했다. 내가 맡은 건? D, B, 그리고 C. "하드 너 C는 왜 줬어? 이미 지쳤잖아." 실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맞다. 난 이미 이 고객사에 3번 견적을 냈다. 매번 "좀 더 깎아달라"고 했다. 매번 거절당했다. 왜 또 내는가? "C 담당 IT팀장이 너한테 편해. 이번엔 되는 게 아니면 포기 선언하고 다른 솔루션 제안해." 아, 그렇구나. 내 인맥과 신뢰가 더 낫다는 거다. 오후 6시. 팀이 자리를 떠났다. 나는 남았다. 오후 6시부터 오전 1시까지, 견적서 라인 첫 번째로 건드린 건 D (제약회사). 전화해서 IT과장이랑 30분 통화. 현재 서버 수명이 다 됐고, 5년 유지보수 계약을 원한다고. 내가 물었다. "예산은?" "정해진 게 없는데 현실적인 선에서요." 그게 뭐 하는 말인가? 5억인 건가, 2억인 건가. 다시 물었다. 세 가지 시나리오로 만들어달라고. 저가형: HPE ProLiant DL380 Gen11 4대 + NetApp A250 (1억 5천만 원) 중가형: DL380 Gen11 6대 + NetApp A400 (2억 3천만 원) 고가형: DL380 Gen11 8대 + NetApp A800 (3억 2천만 원)어느 걸 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 준비해놓는 거다. 이게 영업 기술이다. 엑셀 펼쳤다. 단가표 끌어 내려서 수량 곱하고, 벤더 마진 5% 먹고, 우리 마진 8%를 남겨놓고, 한 30분에 D 견적 3개 시트 완성. 오후 7시 20분. B 은행으로 넘어갔다. B는 새로운 고객사라 복잡했다. RFP에 명확하게 쓰여있지 않은 부분이 5군데. 기술 담당자들한테 구글밋으로 3명이 동시에 물어봐야 했다. SE한테도 "HPE랑 Lenovo 계산 디바이스 호환성 이슈 없겠죠?"라고 카톡했다. SE가 10분 뒤 답해줬다: "특별히 없습니다. 다만 펌웨어 버전 확인하고." 그거 하나로 30분을 더 소비했다. 검색, 리스트 확인, 스펙 맞추기. 오후 8시 45분. B 견적 2시트(기본형, 확장형) 완성. 오후 9시. C 마트 담당자한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견적 드린 거 보셨어요?" "아, 하드. 그건데요, 다시 한번..." 여기서 끊었다. 내가 말을 이어받았다. "예산이 더 줄었나요?" "네, 좀." 마진을 더 깎아야 한다는 뜻이다. 얼마나? 물어보지 않았다. 일단 지금은 시간이 없다. 어제 견적에서 10% 더 깎은 버전을 만들어서 내일 아침 제출하겠다고 했다. 고객이 좋아할 리 없지만, 어쨌든 내일은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오후 10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사무실 흡연실에서. 30대 영업이 하는 조용한 자살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매년 이 시즌만 되면.오후 10시 30분, 예상 못 한 변수 오후 10시 30분에 D 제약회사 IT과장이 또 전화했다. "하드, 근데 혹시 이번에 Dell 말고 Lenovo로도 가능할까?" 내 마음속에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목소리에는 안 냈다. "아, 가능합니다. 근데 납기가 조금 달라질 수 있고, 호환성도 한번 더 봐야 하는데요. 내일 아침 확인하고 대안을 드릴까요?" "그렇게 해주세요." 전화를 끊고 SE에게 카톡했다. "DL380 Lenovo 대체 가능? 내일 오전까지." SE는 답이 바로 안 왔다. 당연하다. 밤 10시 40분이니까. 30분 뒤에 답이 왔다: "하드, 신경써야 할 부분 많습니다. 내일 전화로 이야기할게요." 좋다. 내일 아침 8시 전에 또 한 시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밤 11시. 사무실에는 나 말고 또 2명이 있었다. 인턴 1명, 그리고 기술팀 과장. 기술팀 과장이 말했다. "넌 언제 가?" "새벽 2시쯤." "그럼 내가 6시에 자고 8시에 와. 그 전에 물론 DB 정리하고." 이게 우리 회사 분기 말의 모습이다. 빡세다. 밤 11시 30분, 우선순위 재조정 밤 11시 30분. 문득 깨달았다. 내 우선순위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D는 Lenovo 버전까지 만들어야 하고, B는 SE가 확인을 안 줬고(내일 아침에 주겠지만), C는 10% 인하 버전을 만들어야 하고, A는... 아, A는 어차피 공공이니까 밤새 안 해도 된다. 공공 입찰은 보통 월요일 오전에 공시되니까 당일 대응하면 된다. 그래서 다시 정렬했다.지금 바로: D 기본 버전 마무리 + Lenovo 대체안 준비 (내일 8시 전) 다음: B 견적 최종 확인 (내일 오전 10시 전) 마지막: C 인하 버전 (내일 오전 11시 전)밤 12시 15분. D의 Lenovo 버전을 만들고 있었다. 단가표를 다시 끌어냈다. Dell이랑 Lenovo 단가가 다르다. Lenovo가 보통 3~5% 싸다. 그러면 마진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우리 마진을 8%에서 6%로 깎고, 고객한테는 "최선을 다해 가격을 조정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진짜 우린 자존심 없이 산다. 밤 12시 50분. D 견적 수정본(Lenovo 버전) 완성. 4개 시트다.저가형 Dell 저가형 Lenovo 중가형 Dell 중가형 Lenovo 고가형 Dell 고가형 Lenovo아, 6개다. 수정했다.오전 1시, 정리 시간 오전 1시. 다 만들고 폴더에 저장했다.제약회사D_견적_20240327_v1.xlsx (Dell 3가지) 제약회사D_견적_20240327_v2.xlsx (Lenovo 3가지) 은행B_견적_20240327_초안.xlsx 마트C_견적_20240327_인하버전.xlsx내일(오늘?) 아침에 확인해서 보내면 된다. 오전 1시 15분. 퇴근했다. 지하철이 끊겨서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생각했다. 이렇게 밤새 만든 견적이 몇 개나 수주될까? 통상 50%? 아니, 분기 말에 이렇게 동시에 터지면 70% 이상 수주된다. 고객들도 여러 업체 견적을 받고 있을 테니까, 일단 우리가 빨리 내면 우리가 이긴다. 속도가 무기다. 집에 도착한 게 오전 2시. 아내가 일어나 있었다. "또 밤샘?" "응." "쉬어." 나는 소파에 누웠다. 자지 못했다. 머리가 계속 돌아갔다. 내일 오전 9시부터 D와 B를 동시에 처리해야 한다. D는 8시까지 SE가 Lenovo 호환성을 최종 확인해줘야 한다. B는 기본형이랑 확장형 중 어느 걸 권할지 미리 생각해둬야 한다. C는 10% 깎은 게 경쟁사랑 비교해서 경쟁력 있을지 판단해야 한다. 오전 3시. 휴대폰을 들었다. SE에게 카톡했다: "내일 8시 전에 Lenovo 호환성 확인 부탁. 제약사 급건이라 진짜 중요." SE는 답이 없었다. 자고 있겠지. 오전 3시 30분. 침대로 옮겼다. 아내 옆에 누웠다. 아내가 슬리핑 모드로 말했다: "실적 채워?" "모르겠어. 내일 봐야지." "수주돼." 아내의 예감은 보통 맞다. 아침 6시, 재시작 아침 6시에 깼다. 휴대폰 알림. SE가 답을 했다. "확인했습니다. Lenovo ThinkSystem SR650 시리즈면 문제없습니다. 다만 메모리 호환성은 별도 확인 필요할 수 있으니 고객에게 미리 말씀하세요." 좋다. 그걸로 충분하다. 아침 7시. 사무실에 도착했다. 기술팀 과장도 이미 와 있었다. "잤어?" "2시간." "나도." 우린 웃지 않았다. 아침 7시 30분. 최종 정리.D 견적 2개 버전(Dell, Lenovo) 최종 확인 후 "본송합니다" 메일 준비. B 견적 기본형 추천 포지셍으로 한 줄 코멘트 추가. C 견적 인하버전 정가대비 10.5% 할인 표기해서 임팩트 주기.아침 8시. 전송 시작했다. D: "안녕하세요. 요청하신 Dell 및 Lenovo 버전 견적을 첨부합니다. 저가형(Dell 기준 1억 5천만 원)부터 고가형(3억 2천만 원)까지 3가지 안을 준비했습니다. Lenovo 버전도 동일하게 3가지 제시합니다.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B: "안녕하세요. 귀사의 요건에 맞춰 2가지 안을 준비했습니다. 기본형(1억 2천만 원)을 먼저 추천드립니다만, 향후 확장성을 고려하면 확장형(1억 8천만 원)도 좋은 선택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화상 회의로..." C: "지난번 피드백 반영해서 가격을 조정했습니다. 10.5% 할인한 가격으로 경쟁력 있는 구성을 제시드립니다. 이 정도가 최선입니다. 언제 검토 가능하신가요?" 아침 9시 30분. 메일 3개 전송 완료. D에서 30분 뒤 답장이 왔다. "좋습니다. 내일 회의해봅시다." B에서는 카톡이 왔다. "고마워요. 기본형으로 먼저 검토해볼게요." C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마도 지금 다른 벤더들이랑도 보고 있을 거다. [IMAGE_4] 분기 말 실적의 현실 분기 말이 되면 이런 일이 반복된다. 모든 고객사가 동시에 RFP를 던진다. 모든 영업이 밤을 샌다. 모든 기술팀이 복잡해진다. 모든 벤더(Dell, HPE, NetApp, Cisco)에서 재고 상황을 물어본다. 그 와중에 우리가 이기는 건 빠르기와 신뢰다. D 제약사는 내가 지난 1년간 6번을 찾아갔다. 매번 기술 질문에 답했고, 매번 비용을 상담했다. 그래서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 거다. B 은행은 신규고객이지만, 내가 첫 대면에서 전문성을 보였나 보다. C 마트? 그건 이미 지쳤다. 하지만 가격을 더 깎을 수 있다면 혹시 모르니 계속 간다. 분기 말 실적 10장이 동시에 들어왔을 때, 우린 이렇게 대응한다. 우선순위를 정한다. 밤을 샌다. 견적을 낸다. 기다린다. 수주되거나 떨어진다. 다음 분기를 본다. 이게 하드웨어 영업의 세계다. 오전 10시. 회의실에서 실장과 회의. "D, B 둘 다 일단 클로징 단계로 간 거 맞나?" "B는 기본형으로 검토한다고 했고, D는 내일 회의한대요." "C는?" "글쎄요. 경쟁사 가격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실장이 웃었다. "그럼 D만 해도 3억이 넘는데, 이미 분기 실적의 30%는 확보했네. 좋은데?" 맞다. D가 3억 2천만 원에 들어가면, 나머지 쿼터(약 7억)는 어떻게든 채울 수 있다. B가 1억 8천만 원 들어가면 더 쉽다. 물론 아직 불확실하다. 내일 D 회의에서 예산 조정이라도 나오면? B가 마지막 순간에 경쟁사로 돌아서면? 알 수 없다. 영업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결산 분기 말 3일 전, 견적 10장이 동시에 들어온 날. 나는 밤을 새웠고, 4장을 만들었고, 3장을 보냈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밤을 새웠고, 예상 수주액 5억 2천만 원을 만들었다. 모든 게 수주될 리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일 또 다른 RFP가 들어올 거고, 모레도, 분기 말까지 계속 들어올 거다. 그때마다 우린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빠르게, 정확하게, 그리고 자존심 없이. 오후 1시. 한 끼 먹으러 나간다. 벤더 PM과 맞기로 했다. 면접 장비 계약 건으로. 점심도 일이다.밤을 샌 지 24시간.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