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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낙찰 문자 목요일 오후 3시, 핸드폰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귀사가 낙찰되었습니다." 나라장터 문자다. 45억짜리 공공 프로젝트. 스토리지 교체 건이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장이 물었다. "따냈어?" "네." "얼마 차이로?" "2등이랑 3천만원 차이요." 팀장 얼굴이 굳었다. "마진은?" "한 3% 정도요." 침묵이 흘렀다. 45억에서 3%면 1억 3500만원이다. 여기서 인건비 빠지고, 설치비 빠지고, 사후관리 비용 빠지면 실제 순이익은 5000만원도 안 남는다. 회사 전체가 3개월 매달려서 벌어들이는 돈이 5000만원. 직원 50명 월급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수고했어." 팀장이 등을 두드렸다.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르겠다.입찰 과정 이 건은 2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K지방자치단체 스토리지 교체 사업. RFP 나온 날부터 분석했다. 용량 요구사항, 성능 스펙, 백업 정책, 이중화 구성. NetApp이 딱이었다. 벤더 PM이랑 미팅 세 번 했다. 구성 짜고, 가격 받고, 다시 깎고. 견적서 버전이 15개 나왔다. 문제는 공공 입찰이라는 거다. 최저가 낙찰제. 말 그대로 가장 싼 놈이 이긴다. 기술 평가는 있지만 통과만 하면 끝이다. 나머지는 100% 가격 경쟁이다. 경쟁사를 조사했다. A사, B사, C사. 다 비슷한 구성으로 들어올 게 뻔하다. 문제는 얼마나 깎느냐다. 내부 회의를 했다. "정상 마진은 15%입니다." "10%로 가자." "그러면 실적만 채우는 겁니다." "그래도 따야 해. 올 분기 실적이 부족해." 결국 8%로 견적을 냈다. 벤더한테 추가 디스카운트 받고, 설치비 최소화하고, 교육은 온라인으로 때우기로 했다. 입찰 마감 당일 아침까지 고민했다. 7%로 더 깎을까. 아니면 이대로 갈까. "이대로 갑니다." Enter를 눌렀다. 45억 2300만원.개찰일 개찰은 일주일 후였다. 나라장터에 접속해서 결과를 봤다. 1순위: 우리 회사 - 45억 2300만원 2순위: A사 - 45억 5500만원 3순위: B사 - 46억 1200만원 3천만원 차이로 이겼다.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7%로 더 깎았으면 어땠을까. 아니, 만약 A사가 3천만원만 더 깎았으면. 이게 공공 입찰이다. 3천만원 차이로 45억이 왔다 갔다 한다. SE팀 차장이 물었다. "마진 얼마 남았어요?" "거의 안 남았어요." "설치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알아요. 인건비는 따로 청구하죠." "그게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맞다. 공공 프로젝트는 추가 비용 청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이 전부다. 현장 가서 문제 생기면 우리 돈 들어간다. 기술팀이랑 회의했다. "납기는 3개월입니다." "3개월 안에 설치, 마이그레이션, 테스트 다 끝내야 해요?" "그게 계약이에요." "인력은 얼마나 투입돼요?" "두 명이요." 다들 한숨 쉬었다. 45억짜리 프로젝트에 인력 두 명. 말이 되나.착수 한 달 후 착수 회의가 열렸다. 고객사는 K지자체 정보화담당관실이다. 공무원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계약서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담당 사무관이 말했다. 표정이 없다. 그냥 일이다. "일정 지연되면 안 됩니다. 예산 집행 시한이 있어요." "네, 준수하겠습니다." "추가 비용은 인정 안 됩니다. 계약 금액이 전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SE 박 차장이 말했다. "이거 진짜 3개월 안에 끝낼 수 있어요?" "해야죠." "현장 가보니까 기존 시스템이 생각보다 복잡하던데요." "그래도 해야죠." 박 차장이 창밖을 봤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장비는 2주 후 들어왔다. NetApp 스토리지 4대, 스위치 2대, 케이블 한 박스. 차에 싣고 현장으로 갔다. 설치 시작했다. 랙에 장비 올리고, 케이블 연결하고, 전원 켜고. 기본 설정은 하루 만에 끝났다. 문제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이었다. 기존 스토리지에서 신규 스토리지로 데이터를 옮겨야 한다. 500TB가 넘는다. 무정지로 옮겨야 하니까 밤에 작업해야 한다. 박 차장이랑 둘이서 밤 10시에 현장 들어갔다. 새벽 6시까지 작업했다. 데이터 복사하고, 검증하고, 문제 생기면 롤백하고. 일주일 동안 이걸 반복했다. 집에 못 갔다. 사무실에서 씻고, 차에서 자고, 다시 현장 갔다. 박 차장이 말했다. "이 돈 받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대답 못 했다. 그냥 일이다. 문제 발생 두 달째, 문제가 터졌다. 기존 시스템이랑 신규 스토리지 호환이 안 됐다. RFP에는 없던 레거시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15년 된 시스템이었다. 고객사에 말했다. "이 부분은 추가 작업이 필요합니다." "계약서에 없는 내용은 안 됩니다." "하지만 RFP에도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귀사가 사전 조사를 안 한 겁니다." 말이 안 통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계약서가 전부다. 우리 입장에서는 예상 못 한 변수다. NetApp 벤더한테 전화했다. "기술 지원 좀 해주세요." "유상입니다." "얼마예요?" "3일 투입에 500만원입니다." 마진 깎여 나갔다. 500만원 더 나가면 순이익이 4500만원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적자 프로젝트다. 결국 우리끼리 해결했다. 박 차장이 밤새 코드 뜯어보고, 구글 검색하고, 해외 포럼까지 뒤졌다. "될 것 같아요." "진짜요?" "해봅시다." 패치를 적용했다. 시스템이 돌아갔다. 둘이 하이파이브했다. 새벽 4시였다. 준공 3개월째 마지막 주. 준공 검사가 시작됐다. 고객사 검수팀이 왔다. 체크리스트를 들고 하나하나 확인했다. "성능 테스트 결과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백업 복구 시연해보세요." "지금 하겠습니다." "이중화 전환 테스트 해보세요." "네." 세 시간 동안 검사했다. 문제없이 통과했다. "합격입니다. 준공 처리하겠습니다." 사무관이 도장 찍었다. 끝났다. 차에 타서 박 차장이 말했다. "이제 끝났네요." "네." "다시는 공공 안 하고 싶어요." "저도요." 둘 다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정산했다. 매출: 45억 2300만원 원가: 41억 8000만원 마진: 3억 4300만원 여기서 인건비 1억 5000만원 빠지고, 기타 비용 1억 빠지면 순이익 9300만원. 처음 예상보다 4000만원 줄었다. 3개월 동안 회사 전체가 매달려서 번 돈이 9300만원. 직원 50명 월급이 월 3억이니까, 회사는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돈을 번 거다. 팀장이 말했다. "수고했어. 실적은 올라갔으니까." "네." "다음 분기는 좀 나을 거야." 대답 안 했다. 인센티브 한 달 후 인센티브가 나왔다. 내 몫은 200만원이었다. 45억 프로젝트에서 200만원. 박 차장은 150만원 받았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가 물었다. "형, 공공 입찰이 돈이 되나요?" "안 돼." "그럼 왜 해요?" "실적 채워야 하니까." "그게 무슨 의미예요?" 설명했다. 회사는 분기 매출 목표가 있다. 목표 못 채우면 본사한테 찍힌다. 인원 감축 압박 들어온다. 그래서 마진 없어도 큰 프로젝트 따야 한다. 숫자 채워야 한다. "근데 이익은 안 나잖아요." "그래서 민간 프로젝트로 만회해야지." "민간도 요즘 힘들지 않아요?" "그래서 더 힘든 거야." 후배가 소주를 마셨다. 표정이 어둡다. 박 차장이 말했다. "나 이번 달 말에 퇴사해요." "어디 가요?" "클라우드 SI 회사요. 연봉 30% 올려준대요." "축하해요." "형도 옮기는 거 생각해봐요. 하드웨어는 미래가 없어요." 맞는 말이다. 클라우드 시장이 커지면서 하드웨어 수요는 줄어든다. 공공 프로젝트도 점점 클라우드로 넘어간다. 우리 같은 하드웨어 총판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집에 가는 길에 아내한테 전화했다. "나 이직 알아봐도 돼?" "갑자기 왜?" "하드웨어 시장이 안 좋아." "그래도 지금 회사 다닌 지 8년인데." "8년 다녀봤자 공공 프로젝트에 목숨 걸어야 하는데 마진은 3%야." 아내가 한참 말이 없었다. "알아서 해." "미안해." "괜찮아. 힘들면 쉬어도 돼." 전화 끊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한강이 보였다. 밤 11시였다. 다음 입찰 그로부터 2주 후, 또 공공 입찰 공고가 떴다. 이번에는 60억짜리 서버 교체 사업이다. 규모가 더 크다. 팀장이 말했다. "이거 준비해봐." "저 빠지면 안 될까요?" "왜?" "지난번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해야지. 분기 실적 아직 부족해."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돼요?" "네가 제일 잘하잖아."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노트북 켰다. RFP 다운로드했다. 60억짜리 서버 교체 사업. 또 최저가 낙찰제다. 견적 요청을 벤더한테 보냈다. Dell 담당 PM이 전화 왔다. "이거 또 공공이에요?" "네." "마진 얼마로 갈 건데요?" "5% 정도요." "5%요? 설치비는요?" "최소화할게요." "말이 돼요 그게?" "해야죠." PM이 한숨 쉬었다. "알겠어요. 견적 보낼게요." 전화 끊고 창밖을 봤다. 서울 하늘이 회색이다. 이게 내 일이다. 45억 따내고 기뻐해야 하는데 한숨 나오는 일. 3개월 밤새워도 인센티브 200만원 받는 일. 마진 3%로 회사 실적 채우는 일. 동료들은 클라우드로 옮긴다. SI 회사 간다. AWS 파트너사 간다. 하드웨어는 미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이 일을 해야 한다. 60억짜리 입찰 준비해야 한다. 견적서 15개 버전 만들어야 한다. 또 최저가로 따내야 한다. 마진이 얼마 안 남아도, 밤새워도, 인센티브가 적어도. 그게 내 일이니까. 노트북에 견적서 템플릿을 열었다. 서버 스펙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Dell PowerEdge R750, 64코어, 512GB RAM, 10TB 스토리지. 숫자를 입력하다가 멈췄다. 이게 맞나. 대답은 없다. 그냥 계속 입력했다.45억 따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한지 모르겠다. 다음 입찰도 똑같을 거다.

SE 없이 혼자 기술 스펙을 설명했다가 망한 미팅

SE 없이 혼자 기술 스펙을 설명했다가 망한 미팅

오늘 미팅이 있다 오전 10시. 고객사 CTO 미팅. 상대는 금융권 대형사. 프로젝트 규모 15억. NetApp 스토리지 제안이다. 원래는 SE 태우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SE한테 연락 왔다. "과장님, 죄송한데 내일 다른 미팅이..." 다른 건? 20억짜리 공공 프로젝트. 당연히 그쪽이 우선이다. "알았어. 내가 혼자 갈게." 15억 정도면 혼자 가도 되겠지. 고객사 담당 과장이랑은 친하다. CTO 미팅도 '얼굴 보는' 자리라고 했다. PPT는 벤더에서 받은 거 있다. 어제 밤에 한 번 훑어봤다. ONTAP, SAN, NAS, 이중화, 성능... 뭐 대충 안다. 8년 차다. 이 정도는 간다.미팅 시작 고객사 도착. 11층 회의실. 담당 과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과장님, 오셨어요. CTO님 곧 오십니다." 5분 후 CTO 등장. 50대 중반. 카리스마 있다. "안녕하세요. 하드영업입니다." 악수. 명함 교환. 자리 착석. "오늘 NetApp 제안 들으러 왔습니다." PPT 켠다. 시작한다. 회사 소개, 레퍼런스, 제품 라인업. 여기까진 괜찮다. 외운 거다. 문제는 기술 파트부터다. "NetApp은 ONTAP 기반으로..." CTO가 끼어든다. "ONTAP 버전은요?" "9.14입니다." "클러스터 모드죠?" "네, 클러스터 모드입니다." 이건 안다. SE한테 여러 번 들었다. "SVM은 몇 개까지 구성 가능한가요?" SVM? 뭐였지. Storage... Virtual... Machine? "그건... 용량에 따라 다릅니다." 애매하게 답했다. CTO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무너지는 순간 "그럼 AFF랑 FAS 차이는 뭡니까?" AFF는 All Flash. FAS는... 뭐였지. "FAS는 하이브리드입니다." "하이브리드요? 구체적으로?" "SSD랑 HDD 섞어서..." 틀린 건 아니다. 맞다. 근데 CTO 얼굴이 안 좋다. "SnapMirror 동작 방식은?" 아. 이건 들어봤다. 복제... 백업... 그런 거. "데이터를 다른 스토리지로 복제하는 겁니다." "동기식입니까, 비동기식입니까?" 둘 다 되는 거 아닌가? "둘 다 지원됩니다." "그럼 RPO는요?" RPO? Recovery Point...? "그건... 고객사 요구사항에 맞춰서..." CTO가 펜을 내려놓는다. "SE분은 안 오셨나요?" 칼이다. 정확히 급소를 찌른다. "오늘 다른 미팅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끝이다. 분위기가 끝났다. 나머지 슬라이드는 의미 없다. 30분 미팅이 20분 만에 끝났다. "자료 검토해보겠습니다." 사실상 거절이다.복기 회사 돌아와서 앉았다. 담당 과장한테 카톡 왔다. "과장님, CTO님이 기술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SE분이랑 다시 오시면 검토하겠답니다." 알았다는 답장. 폰 내려놓는다. 8년 차다. 15억짜리 놓쳤다. SE 없이 혼자 간 내가 병신이다. 뭐가 문제였나. ONTAP 버전? 그건 맞췄다. SVM? 대충 얼버무렸다. AFF/FAS? 설명이 부족했다. SnapMirror? 개념만 알았다. RPO? 몰랐다. "대충 안다"가 문제였다. PPT만 보고 갔다. 매뉴얼은 안 읽었다. 벤더 교육? 귀찮아서 안 갔다. SE한테 물어볼 땐 귀동냥만 했다. 8년 동안 견적만 뽑았다. 고객 관계만 관리했다. 기술은? SE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늘 터졌다. 인센티브 1500만원 날아갔다. 그것보다 자존심이 더 아프다. CTO 눈빛이 기억난다.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네.' 맞다. 몰랐다. 변화 그날 저녁부터 시작했다. NetApp 매뉴얼 다운로드. ONTAP 9.14 Administration Guide. 730페이지. PDF다. 일단 목차부터 읽는다. Chapter 1: Architecture Overview. SVM: Storage Virtual Machine. 테넌트별로 격리된 스토리지 환경. 클러스터 하나에 SVM 여러 개. 각 SVM마다 볼륨, LIF, 프로토콜. 아. 이거였구나. AFF: All Flash FAS. FAS: Fabric-Attached Storage. 하이브리드 맞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AFF는 NVMe 지원, QoS 강화, 성능 최적화. FAS는 용량 중심, 비용 효율. SnapMirror? Volume 단위 복제. 비동기: 스케줄 기반, RPO 분/시간 단위. 동기: 실시간, RPO 제로. RPO: Recovery Point Objective. 데이터 손실 허용 범위. RTO: Recovery Time Objective. 복구 시간 목표. 이런 거 하나하나 노트에 적는다. 다음 날 SE한테 전화한다. "저번에 설명했던 AFF 구성..." "과장님, 갑자기 왜요?" "공부 좀 하려고." SE가 놀란다. 당연하다. 8년 동안 한 번도 안 물어봤다. "SnapMirror 동기식이랑 비동기식 차이 좀 설명해줘." SE가 15분 동안 설명한다. 다 받아 적는다. "Aggregate랑 Volume 관계는?" "LIF는 왜 필요한 거야?" "NFS랑 iSCSI 성능 차이는?" 하나씩 물어본다. SE가 답한다. 적는다. 벤더 교육 신청한다. 다음 주 화요일. NetApp 기초 과정. 3일 코스. 회사 교육실. 평소엔 안 갔다. 귀찮아서. 이번엔 간다. 두 달 후 다시 그 고객사. 이번엔 SE랑 같이. CTO 미팅. 재도전이다. 담당 과장이 자리 만들어줬다. "CTO님이 한 번 더 보자고 하셨어요." 미팅 시작. SE가 기술 설명한다. 나는 옆에서 듣는다. "SVM 구성은 이렇게..." 고개 끄덕인다. 이해한다. "SnapMirror는 비동기로 15분 RPO..." 맞다. 알겠다. CTO가 질문한다. "FlexClone은 어떻게 동작합니까?" SE가 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한다. "Snapshot 기반 카피온라이트 방식입니다." "초기엔 메타데이터만 복사하고요." "실제 데이터 변경될 때 블록 할당됩니다." CTO가 나를 본다. 표정이 다르다. 조금 놀란 얼굴. "공부 좀 하셨네요." "네. 지난번 이후로요." SE도 옆에서 놀란다. 미팅 끝나고 나오면서 말한다. "과장님, 언제 그렇게 공부했어요?"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날 미팅. 잘 됐다. 다음 주 POC 일정 잡혔다. 한 달 후 계약 들어갔다. 15억. 인센티브 1500만원. 두 달 전 날린 거 다시 찾았다. 근데 돈보다 다른 게 더 좋다. CTO가 악수하면서 말했다. "영업분인데 기술도 아시네요." "같이 일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 말 한마디. 두 달 공부가 아깝지 않다. 지금 지금도 공부한다. 매주 금요일 오전. 벤더 웨비나 듣는다. NetApp, Dell, HPE, Cisco. 신제품 나오면 매뉴얼 읽는다. 고객사 미팅 전날. 제품 스펙 다시 확인한다. 모르는 거 있으면 SE한테 문는다. SE 없이 가도 된다. 기본 설명은 내가 한다. 깊은 기술은 SE 부른다. 분담이 명확해졌다. 8년 차에 배웠다. 영업도 기술 알아야 한다. "대충 안다"는 위험하다. 고객은 안다. 모르는 걸. CTO 앞에서 망신당한 그날.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그날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다.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SE 없이 혼자 간 미팅, 두 번 다시 그렇게는 안 간다. 아니, 이젠 혼자 가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