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더 PM과의 저녁 술자리가 다음날 미팅을 결정했다

벤더 PM과의 저녁 술자리가 다음날 미팅을 결정했다

예정에 없던 저녁

6시 30분. 퇴근할 타이밍이었다.

Cisco PM 김태준 과장한테 카톡이 왔다.

“형님, 오늘 저녁 어때요? 맥주 한잔요”

원래 계획은 집 가서 애 재우는 거였다. 아내한테 미안하다고 연락했다. 또 늦는다고.

“7시 강남역 OK?”

“ㅇㅇ”

이런 약속은 안 잡을 수가 없다. 벤더 PM이랑 친하면 납기도 빠르고, 긴급 건 처리도 잘된다.

실적이 관계에서 나온다. 이게 하드웨어 영업이다.

고기집에서 시작된 이야기

강남역 3번 출구 고기집.

테이블에 앉자마자 태준이가 먼저 말했다.

“형님, 요즘 Cisco 네트워크 스위치 잘 나가죠?”

“그냥 그래. 공공은 최저가 싸움이고, 금융은 견적만 받아가더라.”

소주 한잔 마시고 고기 구웠다.

태준이는 올해 입사 3년차다. 나보다 5살 어리다. 성실한 편이다. 납기 약속 안 어긴다.

“형님은 어느 섹터가 제일 잘 돼요?”

“공공이랑 금융인데, 요즘은 둘 다 예산이 빡빡해. 클라우드로 다 넘어가잖아.”

“맞아요. 우리도 느껴요.”

술 한잔 더 마셨다.

태준이가 고기 뒤집으면서 물었다.

“형님, 제조업 쪽은 안 하세요?”

“안 해. 우리 팀이 공공/금융이라.”

“아, 그럼 혹시 아는 분 있으면 소개 좀…”

여기서 귀가 좀 열렸다.

제조업체 이야기

태준이가 설명했다.

“저희 큰 제조업체 하나 붙잡고 있는데요. 경기도 화성 쪽 공장이요.”

“어디?”

“OO전자부품. 근데 거기 IT팀장님이 Dell 서버랑 NetApp 스토리지도 같이 교체하려고 하시는데, 저희는 네트워크만 하잖아요.”

“예산은?”

“15억 정도래요. 네트워크가 5억, 서버랑 스토리지가 10억.”

소주잔을 내려놨다.

15억. 10억이 서버랑 스토리지다. 이거 큰 딜이다.

“IT팀장 연락처 있어?”

“있죠. 근데 형님, 제가 소개해드리면 네트워크 쪽 견적 챙겨주실 거죠?”

“당연하지. 네가 물고 온 건데.”

“그럼 내일 아침에 연락처 드릴게요. 팀장님한테 미리 말씀드리고요.”

고기 다 먹었다. 술 두 병 비웠다.

계산은 내가 했다. 12만원. 태준이가 사양했지만 내가 끊었다.

“다음에 네가 쏴.”

“형님, 감사합니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계산했다.

서버 6억, 스토리지 4억. 마진율 12%면 1억 2천. 우리 몫은 6천만원.

인센티브 2천만원 나온다.

분기 실적 채운다.

다음날 오전

9시 10분. 출근하자마자 태준이한테 카톡 왔다.

“형님, OO전자부품 IT팀장 김현수 상무님 연락처요. 010-XXXX-XXXX.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요. 오늘 오후 2시쯤 전화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맙다. 점심 한번 먹자.”

“형님이 계약하시면요 ㅋㅋ”

커피 한잔 마시고 명함 정리했다. CRM에 김현수 상무 등록했다.

회사: OO전자부품
직급: IT담당 상무
연락처: 010-XXXX-XXXX
소스: Cisco PM 김태준
예산규모: 15억 (서버/스토리지 10억)
시기: 3분기 집행 예정

10시에 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제조업체 하나 물어왔습니다. 15억짜리요.”

“어디서?”

“Cisco PM 소개요.”

팀장이 웃었다.

“술값이 실적이 되네. 좋아, 잘해봐.”

“네.”

오후 2시까지 뭘 준비할까 고민했다.

Dell 서버 라인업 자료, NetApp 스토리지 레퍼런스, 제조업 납품 사례.

SE한테 미리 알렸다.

“박 대리, 오늘 오후에 제조업체 상무님한테 전화할 건데, 기술 질문 나오면 바로 받아줄 수 있지?”

“네, 과장님. 뭔데요?”

“서버 6억, 스토리지 4억.”

“오, 큰 거네요. 스펙 나오면 바로 주세요.”

상무님과의 첫 통화

오후 2시 5분. 전화 걸었다.

“여보세요, 상무님. OO총판 영업1팀 하드영업 과장입니다. Cisco 김태준 과장님 소개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들었어요. 태준 과장이 말 많이 하더라고요.”

목소리가 시원했다. 50대 중반쯤.

“상무님, 서버랑 스토리지 교체 건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구성으로 검토 중이신가요?”

“지금 쓰는 게 Dell R730 서버 20대하고 NetApp FAS2600 스토리지인데, 둘 다 5년 넘어서 교체 시기예요. 새로 들일 건 R750 정도 생각하고 있고, 스토리지는 FAS 시리즈로요.”

“용도가 어떻게 되시나요?”

“ERP하고 MES 시스템이요. 공장 가동 데이터 실시간 처리해야 돼서 성능 중요합니다.”

“네, 그러면 R750 스펙이랑 FAS9000 시리즈 한번 검토해드릴게요. 현장 방문해서 구성 상담드려도 될까요?”

“좋아요. 언제 오실래요?”

“내일 오전 괜찮으세요?”

“10시에 오세요. 화성 공장으로.”

“네, 감사합니다.”

전화 끊고 SE한테 바로 연락했다.

“박 대리, 내일 오전 10시 화성 가자. 현장 미팅.”

“네, 과장님. 자료 준비할게요.”

팀장한테도 보고했다.

“내일 현장 갑니다.”

“잘하고 와.”

화성 공장 방문

다음날 오전 8시. 회사 앞에서 SE 박 대리 태우고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 막혔다. 9시 30분에 도착했다.

공장 입구에서 방문증 받고 본관 3층 IT팀 갔다.

김현수 상무가 반갑게 맞아줬다.

“어서 오세요. 멀었죠?”

“괜찮습니다.”

회의실에 앉았다.

상무님이 현재 구성도 보여줬다.

Dell R730 서버 20대, NetApp FAS2600 스토리지 1Set, Cisco Nexus 스위치.

“지금 이게 5년차인데, 보증 기간 끝나서 장애 나면 답이 없어요.”

박 대리가 질문했다.

“워크로드가 어느 정도 되시나요?”

“ERP가 동시 접속 500명, MES는 공장 라인 8개 실시간 데이터 수집이요.”

“그러면 R750 스펙에 메모리 256GB, SSD 2TB 구성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상무님, 예산은 어느 정도 책정되셨어요?”

“15억 정도요. 네트워크 5억, 서버랑 스토리지 10억.”

“납기는요?”

“8월 말까지요. 3분기 예산이거든요.”

“네, 그럼 이번 주 안에 구성이랑 견적 드릴게요.”

“좋아요. 근데 경쟁사도 몇 군데 받을 거예요.”

“당연하죠. 저희가 가격이랑 납기에서 최선 다하겠습니다.”

미팅 끝나고 공장 전산실 구경했다.

서버랙 2개, 케이블 정리 깔끔했다. IT팀이 일 잘한다는 느낌.

점심은 공장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상무님이 사줬다.

“제조업은 IT 투자가 좀 어려워요. 본사에서 예산 따내기가.”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올해는 공장 증설하면서 예산 붙었어요.”

“저희가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이거 될 것 같은데요?”

“해야지. 10억이야.”

“견적 빡세게 써야겠네요.”

“마진 12% 맞춰. 상무님이 합리적이셔.”

견적 작업

회사 돌아와서 견적 작업 시작했다.

Dell 담당 PM한테 전화했다.

“R750 서버 20대, 스펙은 Xeon Gold 6338, 메모리 256GB, SSD 2TB. 견적 좀 받아줘.”

“납기는?”

“8월 말.”

“가능. 대당 3500만원 쳐줄게.”

“20대면 7억이네. 좀 깎아줘.”

“6억 8천. 더는 힘들어.”

“오케이.”

NetApp 담당PM한테도 연락했다.

“FAS9300 1Set, 디스크 100TB. 견적 줘봐.”

“3억 5천.”

“3억 2천 안 돼?”

“과장님, 그럼 마진이 없어요.”

“3억 3천. 파이널.”

“에휴, 알겠습니다.”

서버 6억 8천, 스토리지 3억 3천, 합계 10억 1천.

우리 마진은 1억 2천만원.

Cisco 네트워크는 태준이가 5억에 견적 넣을 거다.

전체 15억 1천.

예산 안에 들어간다.

금요일 오후에 상무님한테 견적서 이메일 보냈다.

“상무님, 구성이랑 견적 보내드립니다. 검토 부탁드려요.”

한 시간 뒤에 답장 왔다.

“잘 봤습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한번 미팅하죠.”

두 번째 미팅과 경쟁

화요일 오전 10시. 다시 화성 갔다.

이번엔 상무님이랑 IT팀 차장, 과장 3명이 같이 있었다.

“과장님, 견적 잘 봤어요. 근데 A사랑 B사도 견적 받았는데, 거기는 좀 더 싸더라고요.”

예상했던 말이다.

“얼마나 차이 나나요?”

“5천만원 정도요.”

“상무님, 저희는 납기가 빠릅니다. A사는 Dell 재고 없으면 3개월 걸려요.”

“그건 알아요.”

박 대리가 기술 설명 시작했다.

“저희 구성은 메모리를 256GB로 넉넉하게 잡았고요, SSD도 2TB로 여유 있게 했습니다. A사 견적은 192GB에 1TB예요.”

차장이 물었다.

“그럼 성능 차이가 많이 나요?”

“ERP 동시 접속 500명이면 256GB는 필요합니다.”

상무님이 고개 끄덕였다.

“알겠어요. 근데 가격을 좀 더 맞춰주시면 좋겠어요.”

“얼마까지 가능하세요?”

“10억 안에 들어오면 좋겠는데.”

“네, 다시 조율해볼게요.”

마진 깎기와 클로징

회사 돌아와서 Dell PM한테 전화했다.

“야, 1천만원만 더 깎아줘. 안 그럼 날아간다.”

“과장님, 진짜 힘든데요.”

“부탁이야. 나도 마진 다 까먹는다.”

“에휴… 6억 7천. 더는 진짜 안 돼요.”

“고맙다.”

NetApp도 3억으로 맞췄다.

합계 9억 7천.

우리 마진 8천만원으로 줄었다. 그래도 괜찮다.

상무님한테 전화했다.

“상무님, 9억 7천으로 맞췄습니다. 납기는 8월 20일 보장해드릴게요.”

“오, 그래요? 그럼 좋네요.”

“계약서 언제 쓸까요?”

“다음주 금요일에 오세요. 결재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전화 끊고 태준이한테 카톡했다.

“야, 했다. 고맙다.”

“ㅋㅋㅋ 형님, 저도 네트워크 5억 따냈어요.”

“점심 쏜다.”

“ㄱㄱ”

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OO전자부품 계약 확정입니다. 9억 7천.”

“수고했어. 이번 분기 실적 채웠네.”

“네.”

자리 앉아서 커피 마셨다.

9억 7천. 마진 8천. 인센티브 1500만원.

분기 실적 120% 달성.

술값 12만원이 1500만원 됐다.

계약의 순간

다음주 금요일. 화성 공장 다시 갔다.

상무님 사무실에서 계약서 썼다.

“과장님, 잘 부탁드려요. 납기 꼭 지켜주세요.”

“네, 상무님. 책임지겠습니다.”

도장 찍고 악수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계약서 들고 나오는데 기분이 좋았다.

차 타고 오는데 박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술값이 이렇게 되는 거네요.”

“관계가 돈이야. 벤더 PM이랑 친하게 지내야 돼.”

“저도 배웁니다.”

회사 도착해서 계약서 스캔하고 회계팀 넘겼다.

태준이한테 전화했다.

“야, 오늘 저녁 먹자. 내가 쏜다.”

“형님, 제가 살게요. 제가 먼저 연락드린 거잖아요.”

“에이, 내가 쏜다.”

저녁 7시. 강남역 고기집 같은 자리.

태준이랑 둘이 소주 마셨다.

“야, 너 덕분에 1500 받는다.”

“형님도 저 덕분에 네트워크 5억 따냈잖아요.”

“그래, 윈윈이지.”

“형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당연하지.”

술 석 잔 마시고 생각했다.

결국 관계다.

고객도 관계, 벤더도 관계, 동료도 관계.

하드웨어 영업은 스펙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다.

술자리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값어치를 한다.

12만원이 1500만원 됐다.

투자 대비 수익률 12,500%.


술값은 영업비가 아니라 투자다. 관계가 실적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