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를 여는 그 순간의 심정

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를 여는 그 순간의 심정

월요일 아침 9시 03분

출근했다. 컴퓨터 켰다. 로그인.

아웃룩이 열린다. 메일 148개. 금요일 퇴근 후부터 쌓인 거다.

RFP 폴더 클릭. 손가락이 떨린다. 진짜로.

새 메일 7개. 월요일치고 많다.

커피 한 모금. 식었다. 1층 편의점서 산 지 20분 됐다.

첫 번째 메일 연다.

“[RFP] 2024년 하반기 서버 증설 건 - 금융공사”

심장이 뛴다.

7개 중 3개는 쓰레기

두 번째 메일. 제목만 봐도 안다.

“견적 요청 - 개인 PC 10대”

삭제. 우리 취급 품목 아니다. 리셀러나 찾아가.

세 번째. “Re: Re: Re: Re: 문의드립니다”

이것도 아니다. 스팸 폴더 갈 걸 빠져나온 거다.

네 번째. “급함 - 내일까지 견적 필요”

일요일 밤 11시 58분 발송. 미친 거 아니야?

내일이 화요일인데 어떻게 하라는 건데.

기술팀 SE한테 물어봐야 구성 나온다.

벤더 PM한테 단가 받아야 견적 나온다.

하루 만에? 불가능하다.

답장 쓴다. “검토 후 수요일 오전까지 드리겠습니다.”

실제론 화요일 밤 10시에 보낼 거다.

진짜 건은 5번째

다섯 번째 메일 클릭.

“[공식 RFP] 2024년 서버 인프라 교체 - ㅇㅇ시청”

첨부파일 3개. PDF 152페이지.

요구사양서, 제안요청서, 계약조건.

예산: 비공개. 입찰 방식: 최저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공 입찰이다. 마진 3%도 안 나온다.

근데 포기 못 한다. 실적이 필요하다.

분기 목표 12억. 현재 4억. 아직 8억 남았다.

이거라도 따야 한다.

PDF 열어본다. 요구사양.

“Dell PowerEdge R750 또는 동급 이상 10대”

동급 이상. 이 문구가 핵심이다.

HPE로 갈까, Lenovo로 갈까.

가격 싸운다. 0.1% 차이로 떨어진다.

한숨 나온다.

6번째 메일이 대박

여섯 번째 클릭.

“서버 증설 검토 요청 - ㅇㅇ증권 IT팀”

첨부파일 없다. 본문 3줄.

“현재 DB 서버 용량 한계. 증설 검토 중. 미팅 가능한가요?”

이거다.

비공식 문의다. 아직 예산 확정 전이다.

지금 들어가면 스펙 주도권 잡는다.

Dell로 밀면 Dell 스펙 들어간다.

경쟁사보다 2주 빠르다.

마우스 클릭. 답장 작성.

“이번 주 목요일 오전 어떠신가요? 직접 방문하겠습니다.”

전송. 기분 좋다.

이런 게 진짜 기회다.

7번째는 지뢰

마지막 메일.

“Re: 지난주 견적 건 - 납기 문제”

심장 떨어진다.

지난주 금요일 클로징한 건이다.

ㅇㅇ병원. NetApp 스토리지 3대. 8500만원.

납기 2주 약속했다.

메일 내용 확인.

“벤더 측에서 재고 없다고 합니다. 4주 소요.”

망했다.

고객한테 전화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납기가…”

변명 준비한다. 머릿속으로.

“글로벌 수급 이슈가…”

“제조사 생산 일정이…”

다 핑계다. 내가 재고 확인 안 한 거다.

금요일 오후 6시. 퇴근 30분 전.

급하게 PO 받았다. 벤더 확인 안 하고.

내 실수다.

전화기 든다. 무겁다.

9시 27분, 커피 식었다

RFP 폴더 닫는다.

7개 확인 끝.

쓸 만한 건 2개. 공공 입찰 1개, 증권사 비공식 1개.

나머지는 쓰레기 또는 지뢰.

월요일 아침 루틴 끝.

이제 시작이다.

견적서 만든다. 기술팀 미팅 잡는다. 벤더 PM한테 전화한다.

고객사한테 사과 전화한다.

커피 식었다. 다시 사러 간다.

1층 편의점. 아메리카노 한 잔 더.

오늘 세 잔째다. 점심 전인데.

매주 반복되는 이 느낌

월요일마다 똑같다.

RFP 폴더 여는 순간.

기대 반, 걱정 반.

“이번 주는 대박 건 있을까?”

“납기 지연 없을까?”

“경쟁사가 먼저 들어간 건 아닐까?”

7개 중 2개 건지면 잘한 거다.

10개 중 1개만 클로징되면 성공이다.

그게 영업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 여는 손가락.

8년째 떨린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월요일이 시작됐다. 커피 한 잔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