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토요일 오전 7시

일어났다. 토요일인데. 골프 약속이 있다. K공사 이 부장. 아내가 눈을 흘긴다. “또 골프?” 뭐라 할 말이 없다.

커피 마시고 골프백 챙겼다. 차에 실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잘하면 다음 입찰 정보 좀 들을 수 있을까.’

골프장 도착

8시. 경기도 어딘가의 골프장. 이 부장이 먼저 와 있다. “하 과장! 오랜만이네.” 악수했다. 힘 있게.

같이 라운드 도는 사람들. K공사 이 부장, 그의 팀장 한 명. 우리 쪽은 나랑 우리 이사님. 이사님이 오늘 비용 다 댄다. 당연히.

캐디가 카트 준비했다. 날씨는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첫 홀로 간다.

전반 9홀

골프를 못 친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친다. 열심히 안 치는 척하면서. 이 부장은 잘 친다. 핸디 12.

“요즘 회사 어때요?” “바쁘지 뭐. 예산 시즌이라.” 귀가 번쩍 뜨인다.

5번 홀쯤. 이 부장이 드라이버를 휘두르면서. “다음 달에 서버 증설 RFP 나갈 거야.” “아, 그래요? 규모가 어느 정도?” “한 30억? Dell이나 HPE 둘 중 하나일 거고.”

메모는 못한다. 머릿속에 새긴다. 30억. Dell 또는 HPE. 다음 달.

점심 식사

클럽하우스. 점심은 우동이랑 돈가스. 이사님이 소주 한 병 시킨다.

술잔을 주고받는다. 이 부장 얼굴이 빨개진다. “사실 말이야.”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진다. 다들.

“L사가 이번에 견적 넣었더라고.” L사. 우리 경쟁사다. 메이저 총판. “어, 그래요?” “근데 가격이 우리 예상보다 낮더라.”

이사님이 거든다. “얼마나 낮던데요?” “20% 정도? 작년 단가 대비.”

20%.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그 정도면 우리도 마진 다 깎아야 따라갈 수 있다.

“L사가 요즘 공격적이더라고요.” “맞아. 분기 실적 안 좋대. 그래서 저가로 밀어붙인다던데.” “아, 그렇구나.”

정보가 들어온다. L사 약점. 분기 실적 압박. 그럼 장기 서비스는 약할 수밖에 없다.

후반 9홀

후반 시작. 이사님이 나한테 속삭인다. “나중에 서비스 카드로 밀어.” “알겠습니다.”

12번 홀. “이 부장님, 서버 증설하면 유지보수는 어떻게?” “그게 문제야. 기존 장비랑 통합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 SE팀이 그쪽 강해요. 기존 인프라 분석부터 해드리고.” “오, 그래?”

떡밥을 던졌다.

15번 홀. 이 부장 팀장이 끼어든다. “L사는 SE 지원이 약하더라고요.” “맞아요. 걔네 SE가 몇 명 안 돼요.” “우린 10명 넘는데.”

이사님이 웃는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미엄이지.”

17번 홀의 폭탄

17번 홀 티박스. 이 부장이 담배를 꺼낸다. “하나 피워도 돼?” “당연하죠.”

담배 연기 사이로. “사실 이번 입찰, L사가 유력해.” 가슴이 철렁한다. “네?”

“우리 임원진이 L사 쪽이랑 친해. 작년에 다른 프로젝트 같이했거든.” “아…” “근데 실무진은 Dell 선호해. HPE보다.”

정보가 정리된다.

  • L사가 임원 라인 잡음
  • 실무진은 Dell 원함
  • 가격은 L사가 20% 낮음
  • 근데 L사 SE 지원 약함

“이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솔직히 가격만 보면 L사지. 근데 서비스는 너희가 낫지.”

찬스다.

“그럼 가격 맞춰드리고, 서비스는 풀로 지원해드리면?” “그럼 고민해볼 만하지.”

이사님이 내 어깨를 톡 친다. ‘잘한다’는 신호.

18번 홀

마지막 홀. 스코어는 개판이다. 내가. 근데 상관없다.

오늘 목표는 골프가 아니니까.

홀아웃하고 악수한다. “오늘 좋았어요. 다음에 또 쳐요.” “그래, 연락해.”

샤워하고 나왔다. 주차장에서 이사님이 말한다. “잘했어. 오늘.”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Dell 본사 PM한테 연락해. 특가 받아와.” “네. 그리고 SE팀한테 K공사 기존 인프라 분석 시작하라고 할게요.” “좋아. 이번 건 따야 해.”

집 도착

오후 6시. 집에 도착했다. 피곤하다. 골프보다 머리 쓰는 게 더 피곤했다.

아내가 묻는다. “골프 어땠어?” “응, 괜찮았어.”

저녁 먹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들은 정보들.

  • L사 가격: 작년 대비 -20%
  • L사 약점: SE 지원 약함, 분기 실적 압박
  • 고객사 니즈: Dell 서버 + 통합 유지보수
  • 임원 라인: L사 우호적
  • 실무 라인: 우리 쪽 서비스 선호

전략이 보인다.

가격은 L사 -5% 수준으로 맞춘다. 마진 거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SE 지원 풀로 넣는다. 기존 인프라 분석, 마이그레이션 계획, 3년 무상 기술지원. 이거면 실무진 설득 가능하다.

실무진이 임원 설득하면 끝.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이사님한테 보고한다. “Dell PM한테 연락했습니다. 특가 협의 중이고요.” “SE팀은?” “K공사 기존 구성 분석 시작했습니다.”

“좋아. 견적은 언제 나와?” “이번 주 금요일까지.” “RFP 나오면 바로 대응해.”

이 부장한테 문자 보냈다. “토요일 감사했습니다. 다음 주에 커피 한잔해요.” 답장 온다. “ㅋㅋ 응 연락해.”

관계는 유지됐다.

RFP 공고

2주 뒤. K공사 RFP 떴다. Dell 서버 증설, 예산 30억. 예상대로다.

견적 준비한다. Dell 본사에서 특가 받아왔다. L사보다 3% 높다. 괜찮다.

제안서 작성. 기술팀이랑 밤새 작업한다.

  • 기존 인프라 현황 분석
  • Dell 서버 최적 구성
  • 마이그레이션 상세 계획
  • 3년 무상 기술지원
  • SE 투입 계획 (주 2회 상주)

제안서 두께가 200페이지. L사는 아마 100페이지 안 될 거다.

입찰 당일

D-day. K공사 회의실. 우리랑 L사, 그리고 H사 하나 더.

프레젠테이션 순서는 추첨. 우리가 두 번째.

L사가 먼저 발표한다. 역시 가격 중심이다. “30억 예산을 27억으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임원들 눈빛이 반짝인다.

우리 차례. 이사님이 프레젠테이션 시작한다. 가격 얘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기존 인프라와의 통합이 핵심입니다.” 기술 검토 자료를 보여준다. K공사 현재 서버 구성, 병목 지점, 최적화 방안.

이 부장 표정이 바뀐다. ‘우리 시스템을 이렇게 분석했어?’

SE 지원 계획을 설명한다. “주 2회 상주 지원, 3년 무상 기술지원.” “마이그레이션 전 과정 책임집니다.”

마지막에 가격. “28억 5천입니다.” L사보다 1.5억 높다.

“하지만.” 이사님이 말을 잇는다. “서비스 원가까지 계산하시면 오히려 저렴합니다.”

결과 발표

일주일 뒤. 이 부장한테 전화 왔다. “하 과장, 축하해.” “네? 저희가요?” “응. 너희로 결정났어.”

주먹을 불끈 쥔다.

“임원진 설득이 쉽지 않았어. 가격 때문에.” “네…” “근데 우리 팀에서 서비스 리스크 보고서 올렸거든.” “아, 그러셨구나.”

“L사는 SE 지원이 약하고, 장기적으로 유지보수 비용 더 들 거라고.” “감사합니다.” “뭘. 그냥 사실대로 보고한 거지.”

골프 라운드의 효과. 정보 수집, 관계 유지, 그리고 신뢰.

“다음 주에 킥오프 미팅 잡자.” “네, 일정 조율하겠습니다.”

팀 회식

저녁. 팀 회식 자리. 이사님이 소주잔을 든다. “하 과장, 수고했어.” “아닙니다. 팀 덕분입니다.”

SE팀 김 차장이 거든다. “제안서 만들 때 죽는 줄 알았어.” “형, 형 있어서 땄습니다.”

술이 돈다. 30억 계약. 마진은 5% 정도. 1억 5천. 인센티브로 내가 가져갈 거 한 2천?

올해 목표 절반은 채웠다.

집 가는 길

택시 안. 창밖을 본다. 서울 야경이 지나간다.

생각한다. 골프 라운드 하나로 시작된 계약.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난 게 아깝지 않다.

이 바닥은 이런 거다. 정보, 관계, 타이밍. 기술이나 가격만으로는 안 된다.

술자리, 골프, 커피 미팅. 다 영업이다.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 내고 내린다.

아내한테 문자. “집 앞이야. 큰 계약 땄어.” 답장. “축하해. 들어와.”

현관문을 연다. 불이 켜져 있다.


골프 한 번에 30억.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