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더 PM과의 저녁 술자리가 다음날 미팅을 결정했다

벤더 PM과의 저녁 술자리가 다음날 미팅을 결정했다

예정에 없던 저녁 6시 30분. 퇴근할 타이밍이었다. Cisco PM 김태준 과장한테 카톡이 왔다. "형님, 오늘 저녁 어때요? 맥주 한잔요" 원래 계획은 집 가서 애 재우는 거였다. 아내한테 미안하다고 연락했다. 또 늦는다고. "7시 강남역 OK?" "ㅇㅇ" 이런 약속은 안 잡을 수가 없다. 벤더 PM이랑 친하면 납기도 빠르고, 긴급 건 처리도 잘된다. 실적이 관계에서 나온다. 이게 하드웨어 영업이다.고기집에서 시작된 이야기 강남역 3번 출구 고기집. 테이블에 앉자마자 태준이가 먼저 말했다. "형님, 요즘 Cisco 네트워크 스위치 잘 나가죠?" "그냥 그래. 공공은 최저가 싸움이고, 금융은 견적만 받아가더라." 소주 한잔 마시고 고기 구웠다. 태준이는 올해 입사 3년차다. 나보다 5살 어리다. 성실한 편이다. 납기 약속 안 어긴다. "형님은 어느 섹터가 제일 잘 돼요?" "공공이랑 금융인데, 요즘은 둘 다 예산이 빡빡해. 클라우드로 다 넘어가잖아." "맞아요. 우리도 느껴요." 술 한잔 더 마셨다. 태준이가 고기 뒤집으면서 물었다. "형님, 제조업 쪽은 안 하세요?" "안 해. 우리 팀이 공공/금융이라." "아, 그럼 혹시 아는 분 있으면 소개 좀..." 여기서 귀가 좀 열렸다.제조업체 이야기 태준이가 설명했다. "저희 큰 제조업체 하나 붙잡고 있는데요. 경기도 화성 쪽 공장이요." "어디?" "OO전자부품. 근데 거기 IT팀장님이 Dell 서버랑 NetApp 스토리지도 같이 교체하려고 하시는데, 저희는 네트워크만 하잖아요." "예산은?" "15억 정도래요. 네트워크가 5억, 서버랑 스토리지가 10억." 소주잔을 내려놨다. 15억. 10억이 서버랑 스토리지다. 이거 큰 딜이다. "IT팀장 연락처 있어?" "있죠. 근데 형님, 제가 소개해드리면 네트워크 쪽 견적 챙겨주실 거죠?" "당연하지. 네가 물고 온 건데." "그럼 내일 아침에 연락처 드릴게요. 팀장님한테 미리 말씀드리고요." 고기 다 먹었다. 술 두 병 비웠다. 계산은 내가 했다. 12만원. 태준이가 사양했지만 내가 끊었다. "다음에 네가 쏴." "형님, 감사합니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계산했다. 서버 6억, 스토리지 4억. 마진율 12%면 1억 2천. 우리 몫은 6천만원. 인센티브 2천만원 나온다. 분기 실적 채운다.다음날 오전 9시 10분. 출근하자마자 태준이한테 카톡 왔다. "형님, OO전자부품 IT팀장 김현수 상무님 연락처요. 010-XXXX-XXXX.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요. 오늘 오후 2시쯤 전화 주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맙다. 점심 한번 먹자." "형님이 계약하시면요 ㅋㅋ" 커피 한잔 마시고 명함 정리했다. CRM에 김현수 상무 등록했다. 회사: OO전자부품직급: IT담당 상무연락처: 010-XXXX-XXXX소스: Cisco PM 김태준예산규모: 15억 (서버/스토리지 10억)시기: 3분기 집행 예정 10시에 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제조업체 하나 물어왔습니다. 15억짜리요." "어디서?" "Cisco PM 소개요." 팀장이 웃었다. "술값이 실적이 되네. 좋아, 잘해봐." "네." 오후 2시까지 뭘 준비할까 고민했다. Dell 서버 라인업 자료, NetApp 스토리지 레퍼런스, 제조업 납품 사례. SE한테 미리 알렸다. "박 대리, 오늘 오후에 제조업체 상무님한테 전화할 건데, 기술 질문 나오면 바로 받아줄 수 있지?" "네, 과장님. 뭔데요?" "서버 6억, 스토리지 4억." "오, 큰 거네요. 스펙 나오면 바로 주세요." 상무님과의 첫 통화 오후 2시 5분. 전화 걸었다. "여보세요, 상무님. OO총판 영업1팀 하드영업 과장입니다. Cisco 김태준 과장님 소개로 연락드렸습니다." "아, 네. 들었어요. 태준 과장이 말 많이 하더라고요." 목소리가 시원했다. 50대 중반쯤. "상무님, 서버랑 스토리지 교체 건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구성으로 검토 중이신가요?" "지금 쓰는 게 Dell R730 서버 20대하고 NetApp FAS2600 스토리지인데, 둘 다 5년 넘어서 교체 시기예요. 새로 들일 건 R750 정도 생각하고 있고, 스토리지는 FAS 시리즈로요." "용도가 어떻게 되시나요?" "ERP하고 MES 시스템이요. 공장 가동 데이터 실시간 처리해야 돼서 성능 중요합니다." "네, 그러면 R750 스펙이랑 FAS9000 시리즈 한번 검토해드릴게요. 현장 방문해서 구성 상담드려도 될까요?" "좋아요. 언제 오실래요?" "내일 오전 괜찮으세요?" "10시에 오세요. 화성 공장으로." "네, 감사합니다." 전화 끊고 SE한테 바로 연락했다. "박 대리, 내일 오전 10시 화성 가자. 현장 미팅." "네, 과장님. 자료 준비할게요." 팀장한테도 보고했다. "내일 현장 갑니다." "잘하고 와." 화성 공장 방문 다음날 오전 8시. 회사 앞에서 SE 박 대리 태우고 출발했다. 경부고속도로 막혔다. 9시 30분에 도착했다. 공장 입구에서 방문증 받고 본관 3층 IT팀 갔다. 김현수 상무가 반갑게 맞아줬다. "어서 오세요. 멀었죠?" "괜찮습니다." 회의실에 앉았다. 상무님이 현재 구성도 보여줬다. Dell R730 서버 20대, NetApp FAS2600 스토리지 1Set, Cisco Nexus 스위치. "지금 이게 5년차인데, 보증 기간 끝나서 장애 나면 답이 없어요." 박 대리가 질문했다. "워크로드가 어느 정도 되시나요?" "ERP가 동시 접속 500명, MES는 공장 라인 8개 실시간 데이터 수집이요." "그러면 R750 스펙에 메모리 256GB, SSD 2TB 구성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내가 끼어들었다. "상무님, 예산은 어느 정도 책정되셨어요?" "15억 정도요. 네트워크 5억, 서버랑 스토리지 10억." "납기는요?" "8월 말까지요. 3분기 예산이거든요." "네, 그럼 이번 주 안에 구성이랑 견적 드릴게요." "좋아요. 근데 경쟁사도 몇 군데 받을 거예요." "당연하죠. 저희가 가격이랑 납기에서 최선 다하겠습니다." 미팅 끝나고 공장 전산실 구경했다. 서버랙 2개, 케이블 정리 깔끔했다. IT팀이 일 잘한다는 느낌. 점심은 공장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상무님이 사줬다. "제조업은 IT 투자가 좀 어려워요. 본사에서 예산 따내기가."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올해는 공장 증설하면서 예산 붙었어요." "저희가 잘 도와드리겠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박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이거 될 것 같은데요?" "해야지. 10억이야." "견적 빡세게 써야겠네요." "마진 12% 맞춰. 상무님이 합리적이셔." 견적 작업 회사 돌아와서 견적 작업 시작했다. Dell 담당 PM한테 전화했다. "R750 서버 20대, 스펙은 Xeon Gold 6338, 메모리 256GB, SSD 2TB. 견적 좀 받아줘." "납기는?" "8월 말." "가능. 대당 3500만원 쳐줄게." "20대면 7억이네. 좀 깎아줘." "6억 8천. 더는 힘들어." "오케이." NetApp 담당PM한테도 연락했다. "FAS9300 1Set, 디스크 100TB. 견적 줘봐." "3억 5천." "3억 2천 안 돼?" "과장님, 그럼 마진이 없어요." "3억 3천. 파이널." "에휴, 알겠습니다." 서버 6억 8천, 스토리지 3억 3천, 합계 10억 1천. 우리 마진은 1억 2천만원. Cisco 네트워크는 태준이가 5억에 견적 넣을 거다. 전체 15억 1천. 예산 안에 들어간다. 금요일 오후에 상무님한테 견적서 이메일 보냈다. "상무님, 구성이랑 견적 보내드립니다. 검토 부탁드려요." 한 시간 뒤에 답장 왔다. "잘 봤습니다. 다음주 화요일에 다시 한번 미팅하죠." 두 번째 미팅과 경쟁 화요일 오전 10시. 다시 화성 갔다. 이번엔 상무님이랑 IT팀 차장, 과장 3명이 같이 있었다. "과장님, 견적 잘 봤어요. 근데 A사랑 B사도 견적 받았는데, 거기는 좀 더 싸더라고요." 예상했던 말이다. "얼마나 차이 나나요?" "5천만원 정도요." "상무님, 저희는 납기가 빠릅니다. A사는 Dell 재고 없으면 3개월 걸려요." "그건 알아요." 박 대리가 기술 설명 시작했다. "저희 구성은 메모리를 256GB로 넉넉하게 잡았고요, SSD도 2TB로 여유 있게 했습니다. A사 견적은 192GB에 1TB예요." 차장이 물었다. "그럼 성능 차이가 많이 나요?" "ERP 동시 접속 500명이면 256GB는 필요합니다." 상무님이 고개 끄덕였다. "알겠어요. 근데 가격을 좀 더 맞춰주시면 좋겠어요." "얼마까지 가능하세요?" "10억 안에 들어오면 좋겠는데." "네, 다시 조율해볼게요." 마진 깎기와 클로징 회사 돌아와서 Dell PM한테 전화했다. "야, 1천만원만 더 깎아줘. 안 그럼 날아간다." "과장님, 진짜 힘든데요." "부탁이야. 나도 마진 다 까먹는다." "에휴... 6억 7천. 더는 진짜 안 돼요." "고맙다." NetApp도 3억으로 맞췄다. 합계 9억 7천. 우리 마진 8천만원으로 줄었다. 그래도 괜찮다. 상무님한테 전화했다. "상무님, 9억 7천으로 맞췄습니다. 납기는 8월 20일 보장해드릴게요." "오, 그래요? 그럼 좋네요." "계약서 언제 쓸까요?" "다음주 금요일에 오세요. 결재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전화 끊고 태준이한테 카톡했다. "야, 했다. 고맙다." "ㅋㅋㅋ 형님, 저도 네트워크 5억 따냈어요." "점심 쏜다." "ㄱㄱ" 팀장한테 보고했다. "팀장님, OO전자부품 계약 확정입니다. 9억 7천." "수고했어. 이번 분기 실적 채웠네." "네." 자리 앉아서 커피 마셨다. 9억 7천. 마진 8천. 인센티브 1500만원. 분기 실적 120% 달성. 술값 12만원이 1500만원 됐다. 계약의 순간 다음주 금요일. 화성 공장 다시 갔다. 상무님 사무실에서 계약서 썼다. "과장님, 잘 부탁드려요. 납기 꼭 지켜주세요." "네, 상무님. 책임지겠습니다." 도장 찍고 악수했다.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계약서 들고 나오는데 기분이 좋았다. 차 타고 오는데 박 대리가 말했다. "과장님, 술값이 이렇게 되는 거네요." "관계가 돈이야. 벤더 PM이랑 친하게 지내야 돼." "저도 배웁니다." 회사 도착해서 계약서 스캔하고 회계팀 넘겼다. 태준이한테 전화했다. "야, 오늘 저녁 먹자. 내가 쏜다." "형님, 제가 살게요. 제가 먼저 연락드린 거잖아요." "에이, 내가 쏜다." 저녁 7시. 강남역 고기집 같은 자리. 태준이랑 둘이 소주 마셨다. "야, 너 덕분에 1500 받는다." "형님도 저 덕분에 네트워크 5억 따냈잖아요." "그래, 윈윈이지." "형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당연하지." 술 석 잔 마시고 생각했다. 결국 관계다. 고객도 관계, 벤더도 관계, 동료도 관계. 하드웨어 영업은 스펙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더 중요하다. 술자리가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값어치를 한다. 12만원이 1500만원 됐다. 투자 대비 수익률 12,500%.술값은 영업비가 아니라 투자다. 관계가 실적 만든다.

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고객사 IT부장과의 골프 라운드에서 일어난 일 토요일 오전 7시 일어났다. 토요일인데. 골프 약속이 있다. K공사 이 부장. 아내가 눈을 흘긴다. "또 골프?" 뭐라 할 말이 없다. 커피 마시고 골프백 챙겼다. 차에 실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잘하면 다음 입찰 정보 좀 들을 수 있을까.'골프장 도착 8시. 경기도 어딘가의 골프장. 이 부장이 먼저 와 있다. "하 과장! 오랜만이네." 악수했다. 힘 있게. 같이 라운드 도는 사람들. K공사 이 부장, 그의 팀장 한 명. 우리 쪽은 나랑 우리 이사님. 이사님이 오늘 비용 다 댄다. 당연히. 캐디가 카트 준비했다. 날씨는 좋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첫 홀로 간다. 전반 9홀 골프를 못 친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친다. 열심히 안 치는 척하면서. 이 부장은 잘 친다. 핸디 12. "요즘 회사 어때요?" "바쁘지 뭐. 예산 시즌이라." 귀가 번쩍 뜨인다. 5번 홀쯤. 이 부장이 드라이버를 휘두르면서. "다음 달에 서버 증설 RFP 나갈 거야." "아, 그래요? 규모가 어느 정도?" "한 30억? Dell이나 HPE 둘 중 하나일 거고." 메모는 못한다. 머릿속에 새긴다. 30억. Dell 또는 HPE. 다음 달.점심 식사 클럽하우스. 점심은 우동이랑 돈가스. 이사님이 소주 한 병 시킨다. 술잔을 주고받는다. 이 부장 얼굴이 빨개진다. "사실 말이야."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진다. 다들. "L사가 이번에 견적 넣었더라고." L사. 우리 경쟁사다. 메이저 총판. "어, 그래요?" "근데 가격이 우리 예상보다 낮더라." 이사님이 거든다. "얼마나 낮던데요?" "20% 정도? 작년 단가 대비." 20%. 머릿속으로 계산한다. 그 정도면 우리도 마진 다 깎아야 따라갈 수 있다. "L사가 요즘 공격적이더라고요." "맞아. 분기 실적 안 좋대. 그래서 저가로 밀어붙인다던데." "아, 그렇구나." 정보가 들어온다. L사 약점. 분기 실적 압박. 그럼 장기 서비스는 약할 수밖에 없다. 후반 9홀 후반 시작. 이사님이 나한테 속삭인다. "나중에 서비스 카드로 밀어." "알겠습니다." 12번 홀. "이 부장님, 서버 증설하면 유지보수는 어떻게?" "그게 문제야. 기존 장비랑 통합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 SE팀이 그쪽 강해요. 기존 인프라 분석부터 해드리고." "오, 그래?" 떡밥을 던졌다. 15번 홀. 이 부장 팀장이 끼어든다. "L사는 SE 지원이 약하더라고요." "맞아요. 걔네 SE가 몇 명 안 돼요." "우린 10명 넘는데." 이사님이 웃는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미엄이지."17번 홀의 폭탄 17번 홀 티박스. 이 부장이 담배를 꺼낸다. "하나 피워도 돼?" "당연하죠." 담배 연기 사이로. "사실 이번 입찰, L사가 유력해." 가슴이 철렁한다. "네?" "우리 임원진이 L사 쪽이랑 친해. 작년에 다른 프로젝트 같이했거든." "아..." "근데 실무진은 Dell 선호해. HPE보다." 정보가 정리된다.L사가 임원 라인 잡음 실무진은 Dell 원함 가격은 L사가 20% 낮음 근데 L사 SE 지원 약함"이 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솔직히 가격만 보면 L사지. 근데 서비스는 너희가 낫지." 찬스다. "그럼 가격 맞춰드리고, 서비스는 풀로 지원해드리면?" "그럼 고민해볼 만하지." 이사님이 내 어깨를 톡 친다. '잘한다'는 신호. 18번 홀 마지막 홀. 스코어는 개판이다. 내가. 근데 상관없다. 오늘 목표는 골프가 아니니까. 홀아웃하고 악수한다. "오늘 좋았어요. 다음에 또 쳐요." "그래, 연락해." 샤워하고 나왔다. 주차장에서 이사님이 말한다. "잘했어. 오늘." "감사합니다." "월요일에 Dell 본사 PM한테 연락해. 특가 받아와." "네. 그리고 SE팀한테 K공사 기존 인프라 분석 시작하라고 할게요." "좋아. 이번 건 따야 해." 집 도착 오후 6시. 집에 도착했다. 피곤하다. 골프보다 머리 쓰는 게 더 피곤했다. 아내가 묻는다. "골프 어땠어?" "응, 괜찮았어." 저녁 먹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들은 정보들.L사 가격: 작년 대비 -20% L사 약점: SE 지원 약함, 분기 실적 압박 고객사 니즈: Dell 서버 + 통합 유지보수 임원 라인: L사 우호적 실무 라인: 우리 쪽 서비스 선호전략이 보인다. 가격은 L사 -5% 수준으로 맞춘다. 마진 거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SE 지원 풀로 넣는다. 기존 인프라 분석, 마이그레이션 계획, 3년 무상 기술지원. 이거면 실무진 설득 가능하다. 실무진이 임원 설득하면 끝. 월요일 아침 출근했다. 이사님한테 보고한다. "Dell PM한테 연락했습니다. 특가 협의 중이고요." "SE팀은?" "K공사 기존 구성 분석 시작했습니다." "좋아. 견적은 언제 나와?" "이번 주 금요일까지." "RFP 나오면 바로 대응해." 이 부장한테 문자 보냈다. "토요일 감사했습니다. 다음 주에 커피 한잔해요." 답장 온다. "ㅋㅋ 응 연락해." 관계는 유지됐다. RFP 공고 2주 뒤. K공사 RFP 떴다. Dell 서버 증설, 예산 30억. 예상대로다. 견적 준비한다. Dell 본사에서 특가 받아왔다. L사보다 3% 높다. 괜찮다. 제안서 작성. 기술팀이랑 밤새 작업한다.기존 인프라 현황 분석 Dell 서버 최적 구성 마이그레이션 상세 계획 3년 무상 기술지원 SE 투입 계획 (주 2회 상주)제안서 두께가 200페이지. L사는 아마 100페이지 안 될 거다. 입찰 당일 D-day. K공사 회의실. 우리랑 L사, 그리고 H사 하나 더. 프레젠테이션 순서는 추첨. 우리가 두 번째. L사가 먼저 발표한다. 역시 가격 중심이다. "30억 예산을 27억으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임원들 눈빛이 반짝인다. 우리 차례. 이사님이 프레젠테이션 시작한다. 가격 얘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기존 인프라와의 통합이 핵심입니다." 기술 검토 자료를 보여준다. K공사 현재 서버 구성, 병목 지점, 최적화 방안. 이 부장 표정이 바뀐다. '우리 시스템을 이렇게 분석했어?' SE 지원 계획을 설명한다. "주 2회 상주 지원, 3년 무상 기술지원." "마이그레이션 전 과정 책임집니다." 마지막에 가격. "28억 5천입니다." L사보다 1.5억 높다. "하지만." 이사님이 말을 잇는다. "서비스 원가까지 계산하시면 오히려 저렴합니다." 결과 발표 일주일 뒤. 이 부장한테 전화 왔다. "하 과장, 축하해." "네? 저희가요?" "응. 너희로 결정났어." 주먹을 불끈 쥔다. "임원진 설득이 쉽지 않았어. 가격 때문에." "네..." "근데 우리 팀에서 서비스 리스크 보고서 올렸거든." "아, 그러셨구나." "L사는 SE 지원이 약하고, 장기적으로 유지보수 비용 더 들 거라고." "감사합니다." "뭘. 그냥 사실대로 보고한 거지." 골프 라운드의 효과. 정보 수집, 관계 유지, 그리고 신뢰. "다음 주에 킥오프 미팅 잡자." "네, 일정 조율하겠습니다." 팀 회식 저녁. 팀 회식 자리. 이사님이 소주잔을 든다. "하 과장, 수고했어." "아닙니다. 팀 덕분입니다." SE팀 김 차장이 거든다. "제안서 만들 때 죽는 줄 알았어." "형, 형 있어서 땄습니다." 술이 돈다. 30억 계약. 마진은 5% 정도. 1억 5천. 인센티브로 내가 가져갈 거 한 2천? 올해 목표 절반은 채웠다. 집 가는 길 택시 안. 창밖을 본다. 서울 야경이 지나간다. 생각한다. 골프 라운드 하나로 시작된 계약. 토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난 게 아깝지 않다. 이 바닥은 이런 거다. 정보, 관계, 타이밍. 기술이나 가격만으로는 안 된다. 술자리, 골프, 커피 미팅. 다 영업이다.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비 내고 내린다. 아내한테 문자. "집 앞이야. 큰 계약 땄어." 답장. "축하해. 들어와." 현관문을 연다. 불이 켜져 있다.골프 한 번에 30억. 나쁘지 않다.

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공공 입찰에서 최저가로 낙찰, 축하할 일인가 한숨 쉬어야 할 일인가 낙찰 문자 목요일 오후 3시, 핸드폰이 울렸다. "축하합니다. 귀사가 낙찰되었습니다." 나라장터 문자다. 45억짜리 공공 프로젝트. 스토리지 교체 건이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팀장이 물었다. "따냈어?" "네." "얼마 차이로?" "2등이랑 3천만원 차이요." 팀장 얼굴이 굳었다. "마진은?" "한 3% 정도요." 침묵이 흘렀다. 45억에서 3%면 1억 3500만원이다. 여기서 인건비 빠지고, 설치비 빠지고, 사후관리 비용 빠지면 실제 순이익은 5000만원도 안 남는다. 회사 전체가 3개월 매달려서 벌어들이는 돈이 5000만원. 직원 50명 월급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수고했어." 팀장이 등을 두드렸다.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르겠다.입찰 과정 이 건은 2개월 전부터 준비했다. K지방자치단체 스토리지 교체 사업. RFP 나온 날부터 분석했다. 용량 요구사항, 성능 스펙, 백업 정책, 이중화 구성. NetApp이 딱이었다. 벤더 PM이랑 미팅 세 번 했다. 구성 짜고, 가격 받고, 다시 깎고. 견적서 버전이 15개 나왔다. 문제는 공공 입찰이라는 거다. 최저가 낙찰제. 말 그대로 가장 싼 놈이 이긴다. 기술 평가는 있지만 통과만 하면 끝이다. 나머지는 100% 가격 경쟁이다. 경쟁사를 조사했다. A사, B사, C사. 다 비슷한 구성으로 들어올 게 뻔하다. 문제는 얼마나 깎느냐다. 내부 회의를 했다. "정상 마진은 15%입니다." "10%로 가자." "그러면 실적만 채우는 겁니다." "그래도 따야 해. 올 분기 실적이 부족해." 결국 8%로 견적을 냈다. 벤더한테 추가 디스카운트 받고, 설치비 최소화하고, 교육은 온라인으로 때우기로 했다. 입찰 마감 당일 아침까지 고민했다. 7%로 더 깎을까. 아니면 이대로 갈까. "이대로 갑니다." Enter를 눌렀다. 45억 2300만원.개찰일 개찰은 일주일 후였다. 나라장터에 접속해서 결과를 봤다. 1순위: 우리 회사 - 45억 2300만원 2순위: A사 - 45억 5500만원 3순위: B사 - 46억 1200만원 3천만원 차이로 이겼다.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 7%로 더 깎았으면 어땠을까. 아니, 만약 A사가 3천만원만 더 깎았으면. 이게 공공 입찰이다. 3천만원 차이로 45억이 왔다 갔다 한다. SE팀 차장이 물었다. "마진 얼마 남았어요?" "거의 안 남았어요." "설치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알아요. 인건비는 따로 청구하죠." "그게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맞다. 공공 프로젝트는 추가 비용 청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이 전부다. 현장 가서 문제 생기면 우리 돈 들어간다. 기술팀이랑 회의했다. "납기는 3개월입니다." "3개월 안에 설치, 마이그레이션, 테스트 다 끝내야 해요?" "그게 계약이에요." "인력은 얼마나 투입돼요?" "두 명이요." 다들 한숨 쉬었다. 45억짜리 프로젝트에 인력 두 명. 말이 되나.착수 한 달 후 착수 회의가 열렸다. 고객사는 K지자체 정보화담당관실이다. 공무원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계약서대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담당 사무관이 말했다. 표정이 없다. 그냥 일이다. "일정 지연되면 안 됩니다. 예산 집행 시한이 있어요." "네, 준수하겠습니다." "추가 비용은 인정 안 됩니다. 계약 금액이 전부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회의는 30분 만에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SE 박 차장이 말했다. "이거 진짜 3개월 안에 끝낼 수 있어요?" "해야죠." "현장 가보니까 기존 시스템이 생각보다 복잡하던데요." "그래도 해야죠." 박 차장이 창밖을 봤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장비는 2주 후 들어왔다. NetApp 스토리지 4대, 스위치 2대, 케이블 한 박스. 차에 싣고 현장으로 갔다. 설치 시작했다. 랙에 장비 올리고, 케이블 연결하고, 전원 켜고. 기본 설정은 하루 만에 끝났다. 문제는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이었다. 기존 스토리지에서 신규 스토리지로 데이터를 옮겨야 한다. 500TB가 넘는다. 무정지로 옮겨야 하니까 밤에 작업해야 한다. 박 차장이랑 둘이서 밤 10시에 현장 들어갔다. 새벽 6시까지 작업했다. 데이터 복사하고, 검증하고, 문제 생기면 롤백하고. 일주일 동안 이걸 반복했다. 집에 못 갔다. 사무실에서 씻고, 차에서 자고, 다시 현장 갔다. 박 차장이 말했다. "이 돈 받고 이렇게까지 해야 돼요?" 대답 못 했다. 그냥 일이다. 문제 발생 두 달째, 문제가 터졌다. 기존 시스템이랑 신규 스토리지 호환이 안 됐다. RFP에는 없던 레거시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15년 된 시스템이었다. 고객사에 말했다. "이 부분은 추가 작업이 필요합니다." "계약서에 없는 내용은 안 됩니다." "하지만 RFP에도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귀사가 사전 조사를 안 한 겁니다." 말이 안 통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계약서가 전부다. 우리 입장에서는 예상 못 한 변수다. NetApp 벤더한테 전화했다. "기술 지원 좀 해주세요." "유상입니다." "얼마예요?" "3일 투입에 500만원입니다." 마진 깎여 나갔다. 500만원 더 나가면 순이익이 4500만원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적자 프로젝트다. 결국 우리끼리 해결했다. 박 차장이 밤새 코드 뜯어보고, 구글 검색하고, 해외 포럼까지 뒤졌다. "될 것 같아요." "진짜요?" "해봅시다." 패치를 적용했다. 시스템이 돌아갔다. 둘이 하이파이브했다. 새벽 4시였다. 준공 3개월째 마지막 주. 준공 검사가 시작됐다. 고객사 검수팀이 왔다. 체크리스트를 들고 하나하나 확인했다. "성능 테스트 결과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백업 복구 시연해보세요." "지금 하겠습니다." "이중화 전환 테스트 해보세요." "네." 세 시간 동안 검사했다. 문제없이 통과했다. "합격입니다. 준공 처리하겠습니다." 사무관이 도장 찍었다. 끝났다. 차에 타서 박 차장이 말했다. "이제 끝났네요." "네." "다시는 공공 안 하고 싶어요." "저도요." 둘 다 웃었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정산했다. 매출: 45억 2300만원 원가: 41억 8000만원 마진: 3억 4300만원 여기서 인건비 1억 5000만원 빠지고, 기타 비용 1억 빠지면 순이익 9300만원. 처음 예상보다 4000만원 줄었다. 3개월 동안 회사 전체가 매달려서 번 돈이 9300만원. 직원 50명 월급이 월 3억이니까, 회사는 한 달 월급도 안 되는 돈을 번 거다. 팀장이 말했다. "수고했어. 실적은 올라갔으니까." "네." "다음 분기는 좀 나을 거야." 대답 안 했다. 인센티브 한 달 후 인센티브가 나왔다. 내 몫은 200만원이었다. 45억 프로젝트에서 200만원. 박 차장은 150만원 받았다. 회식 자리에서 후배가 물었다. "형, 공공 입찰이 돈이 되나요?" "안 돼." "그럼 왜 해요?" "실적 채워야 하니까." "그게 무슨 의미예요?" 설명했다. 회사는 분기 매출 목표가 있다. 목표 못 채우면 본사한테 찍힌다. 인원 감축 압박 들어온다. 그래서 마진 없어도 큰 프로젝트 따야 한다. 숫자 채워야 한다. "근데 이익은 안 나잖아요." "그래서 민간 프로젝트로 만회해야지." "민간도 요즘 힘들지 않아요?" "그래서 더 힘든 거야." 후배가 소주를 마셨다. 표정이 어둡다. 박 차장이 말했다. "나 이번 달 말에 퇴사해요." "어디 가요?" "클라우드 SI 회사요. 연봉 30% 올려준대요." "축하해요." "형도 옮기는 거 생각해봐요. 하드웨어는 미래가 없어요." 맞는 말이다. 클라우드 시장이 커지면서 하드웨어 수요는 줄어든다. 공공 프로젝트도 점점 클라우드로 넘어간다. 우리 같은 하드웨어 총판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집에 가는 길에 아내한테 전화했다. "나 이직 알아봐도 돼?" "갑자기 왜?" "하드웨어 시장이 안 좋아." "그래도 지금 회사 다닌 지 8년인데." "8년 다녀봤자 공공 프로젝트에 목숨 걸어야 하는데 마진은 3%야." 아내가 한참 말이 없었다. "알아서 해." "미안해." "괜찮아. 힘들면 쉬어도 돼." 전화 끊고 차 안에 앉아 있었다. 한강이 보였다. 밤 11시였다. 다음 입찰 그로부터 2주 후, 또 공공 입찰 공고가 떴다. 이번에는 60억짜리 서버 교체 사업이다. 규모가 더 크다. 팀장이 말했다. "이거 준비해봐." "저 빠지면 안 될까요?" "왜?" "지난번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해야지. 분기 실적 아직 부족해." "다른 사람 시키면 안 돼요?" "네가 제일 잘하잖아." 할 말이 없었다. 그냥 노트북 켰다. RFP 다운로드했다. 60억짜리 서버 교체 사업. 또 최저가 낙찰제다. 견적 요청을 벤더한테 보냈다. Dell 담당 PM이 전화 왔다. "이거 또 공공이에요?" "네." "마진 얼마로 갈 건데요?" "5% 정도요." "5%요? 설치비는요?" "최소화할게요." "말이 돼요 그게?" "해야죠." PM이 한숨 쉬었다. "알겠어요. 견적 보낼게요." 전화 끊고 창밖을 봤다. 서울 하늘이 회색이다. 이게 내 일이다. 45억 따내고 기뻐해야 하는데 한숨 나오는 일. 3개월 밤새워도 인센티브 200만원 받는 일. 마진 3%로 회사 실적 채우는 일. 동료들은 클라우드로 옮긴다. SI 회사 간다. AWS 파트너사 간다. 하드웨어는 미래 없다고 한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이 일을 해야 한다. 60억짜리 입찰 준비해야 한다. 견적서 15개 버전 만들어야 한다. 또 최저가로 따내야 한다. 마진이 얼마 안 남아도, 밤새워도, 인센티브가 적어도. 그게 내 일이니까. 노트북에 견적서 템플릿을 열었다. 서버 스펙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Dell PowerEdge R750, 64코어, 512GB RAM, 10TB 스토리지. 숫자를 입력하다가 멈췄다. 이게 맞나. 대답은 없다. 그냥 계속 입력했다.45억 따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한지 모르겠다. 다음 입찰도 똑같을 거다.

SE 없이 혼자 기술 스펙을 설명했다가 망한 미팅

SE 없이 혼자 기술 스펙을 설명했다가 망한 미팅

오늘 미팅이 있다 오전 10시. 고객사 CTO 미팅. 상대는 금융권 대형사. 프로젝트 규모 15억. NetApp 스토리지 제안이다. 원래는 SE 태우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에 SE한테 연락 왔다. "과장님, 죄송한데 내일 다른 미팅이..." 다른 건? 20억짜리 공공 프로젝트. 당연히 그쪽이 우선이다. "알았어. 내가 혼자 갈게." 15억 정도면 혼자 가도 되겠지. 고객사 담당 과장이랑은 친하다. CTO 미팅도 '얼굴 보는' 자리라고 했다. PPT는 벤더에서 받은 거 있다. 어제 밤에 한 번 훑어봤다. ONTAP, SAN, NAS, 이중화, 성능... 뭐 대충 안다. 8년 차다. 이 정도는 간다.미팅 시작 고객사 도착. 11층 회의실. 담당 과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과장님, 오셨어요. CTO님 곧 오십니다." 5분 후 CTO 등장. 50대 중반. 카리스마 있다. "안녕하세요. 하드영업입니다." 악수. 명함 교환. 자리 착석. "오늘 NetApp 제안 들으러 왔습니다." PPT 켠다. 시작한다. 회사 소개, 레퍼런스, 제품 라인업. 여기까진 괜찮다. 외운 거다. 문제는 기술 파트부터다. "NetApp은 ONTAP 기반으로..." CTO가 끼어든다. "ONTAP 버전은요?" "9.14입니다." "클러스터 모드죠?" "네, 클러스터 모드입니다." 이건 안다. SE한테 여러 번 들었다. "SVM은 몇 개까지 구성 가능한가요?" SVM? 뭐였지. Storage... Virtual... Machine? "그건... 용량에 따라 다릅니다." 애매하게 답했다. CTO 표정이 미묘하게 변한다.무너지는 순간 "그럼 AFF랑 FAS 차이는 뭡니까?" AFF는 All Flash. FAS는... 뭐였지. "FAS는 하이브리드입니다." "하이브리드요? 구체적으로?" "SSD랑 HDD 섞어서..." 틀린 건 아니다. 맞다. 근데 CTO 얼굴이 안 좋다. "SnapMirror 동작 방식은?" 아. 이건 들어봤다. 복제... 백업... 그런 거. "데이터를 다른 스토리지로 복제하는 겁니다." "동기식입니까, 비동기식입니까?" 둘 다 되는 거 아닌가? "둘 다 지원됩니다." "그럼 RPO는요?" RPO? Recovery Point...? "그건... 고객사 요구사항에 맞춰서..." CTO가 펜을 내려놓는다. "SE분은 안 오셨나요?" 칼이다. 정확히 급소를 찌른다. "오늘 다른 미팅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끝이다. 분위기가 끝났다. 나머지 슬라이드는 의미 없다. 30분 미팅이 20분 만에 끝났다. "자료 검토해보겠습니다." 사실상 거절이다.복기 회사 돌아와서 앉았다. 담당 과장한테 카톡 왔다. "과장님, CTO님이 기술적 깊이가 부족하다고..." "SE분이랑 다시 오시면 검토하겠답니다." 알았다는 답장. 폰 내려놓는다. 8년 차다. 15억짜리 놓쳤다. SE 없이 혼자 간 내가 병신이다. 뭐가 문제였나. ONTAP 버전? 그건 맞췄다. SVM? 대충 얼버무렸다. AFF/FAS? 설명이 부족했다. SnapMirror? 개념만 알았다. RPO? 몰랐다. "대충 안다"가 문제였다. PPT만 보고 갔다. 매뉴얼은 안 읽었다. 벤더 교육? 귀찮아서 안 갔다. SE한테 물어볼 땐 귀동냥만 했다. 8년 동안 견적만 뽑았다. 고객 관계만 관리했다. 기술은? SE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늘 터졌다. 인센티브 1500만원 날아갔다. 그것보다 자존심이 더 아프다. CTO 눈빛이 기억난다. '이 사람 아무것도 모르네.' 맞다. 몰랐다. 변화 그날 저녁부터 시작했다. NetApp 매뉴얼 다운로드. ONTAP 9.14 Administration Guide. 730페이지. PDF다. 일단 목차부터 읽는다. Chapter 1: Architecture Overview. SVM: Storage Virtual Machine. 테넌트별로 격리된 스토리지 환경. 클러스터 하나에 SVM 여러 개. 각 SVM마다 볼륨, LIF, 프로토콜. 아. 이거였구나. AFF: All Flash FAS. FAS: Fabric-Attached Storage. 하이브리드 맞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AFF는 NVMe 지원, QoS 강화, 성능 최적화. FAS는 용량 중심, 비용 효율. SnapMirror? Volume 단위 복제. 비동기: 스케줄 기반, RPO 분/시간 단위. 동기: 실시간, RPO 제로. RPO: Recovery Point Objective. 데이터 손실 허용 범위. RTO: Recovery Time Objective. 복구 시간 목표. 이런 거 하나하나 노트에 적는다. 다음 날 SE한테 전화한다. "저번에 설명했던 AFF 구성..." "과장님, 갑자기 왜요?" "공부 좀 하려고." SE가 놀란다. 당연하다. 8년 동안 한 번도 안 물어봤다. "SnapMirror 동기식이랑 비동기식 차이 좀 설명해줘." SE가 15분 동안 설명한다. 다 받아 적는다. "Aggregate랑 Volume 관계는?" "LIF는 왜 필요한 거야?" "NFS랑 iSCSI 성능 차이는?" 하나씩 물어본다. SE가 답한다. 적는다. 벤더 교육 신청한다. 다음 주 화요일. NetApp 기초 과정. 3일 코스. 회사 교육실. 평소엔 안 갔다. 귀찮아서. 이번엔 간다. 두 달 후 다시 그 고객사. 이번엔 SE랑 같이. CTO 미팅. 재도전이다. 담당 과장이 자리 만들어줬다. "CTO님이 한 번 더 보자고 하셨어요." 미팅 시작. SE가 기술 설명한다. 나는 옆에서 듣는다. "SVM 구성은 이렇게..." 고개 끄덕인다. 이해한다. "SnapMirror는 비동기로 15분 RPO..." 맞다. 알겠다. CTO가 질문한다. "FlexClone은 어떻게 동작합니까?" SE가 답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한다. "Snapshot 기반 카피온라이트 방식입니다." "초기엔 메타데이터만 복사하고요." "실제 데이터 변경될 때 블록 할당됩니다." CTO가 나를 본다. 표정이 다르다. 조금 놀란 얼굴. "공부 좀 하셨네요." "네. 지난번 이후로요." SE도 옆에서 놀란다. 미팅 끝나고 나오면서 말한다. "과장님, 언제 그렇게 공부했어요?" "그냥...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날 미팅. 잘 됐다. 다음 주 POC 일정 잡혔다. 한 달 후 계약 들어갔다. 15억. 인센티브 1500만원. 두 달 전 날린 거 다시 찾았다. 근데 돈보다 다른 게 더 좋다. CTO가 악수하면서 말했다. "영업분인데 기술도 아시네요." "같이 일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 말 한마디. 두 달 공부가 아깝지 않다. 지금 지금도 공부한다. 매주 금요일 오전. 벤더 웨비나 듣는다. NetApp, Dell, HPE, Cisco. 신제품 나오면 매뉴얼 읽는다. 고객사 미팅 전날. 제품 스펙 다시 확인한다. 모르는 거 있으면 SE한테 문는다. SE 없이 가도 된다. 기본 설명은 내가 한다. 깊은 기술은 SE 부른다. 분담이 명확해졌다. 8년 차에 배웠다. 영업도 기술 알아야 한다. "대충 안다"는 위험하다. 고객은 안다. 모르는 걸. CTO 앞에서 망신당한 그날.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그날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다. 내가 얼마나 안일했는지.SE 없이 혼자 간 미팅, 두 번 다시 그렇게는 안 간다. 아니, 이젠 혼자 가도 된다.

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를 여는 그 순간의 심정

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를 여는 그 순간의 심정

월요일 아침 9시 03분 출근했다. 컴퓨터 켰다. 로그인. 아웃룩이 열린다. 메일 148개. 금요일 퇴근 후부터 쌓인 거다. RFP 폴더 클릭. 손가락이 떨린다. 진짜로. 새 메일 7개. 월요일치고 많다. 커피 한 모금. 식었다. 1층 편의점서 산 지 20분 됐다. 첫 번째 메일 연다. "[RFP] 2024년 하반기 서버 증설 건 - 금융공사" 심장이 뛴다.7개 중 3개는 쓰레기 두 번째 메일. 제목만 봐도 안다. "견적 요청 - 개인 PC 10대" 삭제. 우리 취급 품목 아니다. 리셀러나 찾아가. 세 번째. "Re: Re: Re: Re: 문의드립니다" 이것도 아니다. 스팸 폴더 갈 걸 빠져나온 거다. 네 번째. "급함 - 내일까지 견적 필요" 일요일 밤 11시 58분 발송. 미친 거 아니야? 내일이 화요일인데 어떻게 하라는 건데. 기술팀 SE한테 물어봐야 구성 나온다. 벤더 PM한테 단가 받아야 견적 나온다. 하루 만에? 불가능하다. 답장 쓴다. "검토 후 수요일 오전까지 드리겠습니다." 실제론 화요일 밤 10시에 보낼 거다.진짜 건은 5번째 다섯 번째 메일 클릭. "[공식 RFP] 2024년 서버 인프라 교체 - ㅇㅇ시청" 첨부파일 3개. PDF 152페이지. 요구사양서, 제안요청서, 계약조건. 예산: 비공개. 입찰 방식: 최저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공공 입찰이다. 마진 3%도 안 나온다. 근데 포기 못 한다. 실적이 필요하다. 분기 목표 12억. 현재 4억. 아직 8억 남았다. 이거라도 따야 한다. PDF 열어본다. 요구사양. "Dell PowerEdge R750 또는 동급 이상 10대" 동급 이상. 이 문구가 핵심이다. HPE로 갈까, Lenovo로 갈까. 가격 싸운다. 0.1% 차이로 떨어진다. 한숨 나온다. 6번째 메일이 대박 여섯 번째 클릭. "서버 증설 검토 요청 - ㅇㅇ증권 IT팀" 첨부파일 없다. 본문 3줄. "현재 DB 서버 용량 한계. 증설 검토 중. 미팅 가능한가요?" 이거다. 비공식 문의다. 아직 예산 확정 전이다. 지금 들어가면 스펙 주도권 잡는다. Dell로 밀면 Dell 스펙 들어간다. 경쟁사보다 2주 빠르다. 마우스 클릭. 답장 작성. "이번 주 목요일 오전 어떠신가요? 직접 방문하겠습니다." 전송. 기분 좋다. 이런 게 진짜 기회다.7번째는 지뢰 마지막 메일. "Re: 지난주 견적 건 - 납기 문제" 심장 떨어진다. 지난주 금요일 클로징한 건이다. ㅇㅇ병원. NetApp 스토리지 3대. 8500만원. 납기 2주 약속했다. 메일 내용 확인. "벤더 측에서 재고 없다고 합니다. 4주 소요." 망했다. 고객한테 전화해야 한다. "죄송합니다. 납기가..." 변명 준비한다. 머릿속으로. "글로벌 수급 이슈가..." "제조사 생산 일정이..." 다 핑계다. 내가 재고 확인 안 한 거다. 금요일 오후 6시. 퇴근 30분 전. 급하게 PO 받았다. 벤더 확인 안 하고. 내 실수다. 전화기 든다. 무겁다. 9시 27분, 커피 식었다 RFP 폴더 닫는다. 7개 확인 끝. 쓸 만한 건 2개. 공공 입찰 1개, 증권사 비공식 1개. 나머지는 쓰레기 또는 지뢰. 월요일 아침 루틴 끝. 이제 시작이다. 견적서 만든다. 기술팀 미팅 잡는다. 벤더 PM한테 전화한다. 고객사한테 사과 전화한다. 커피 식었다. 다시 사러 간다. 1층 편의점. 아메리카노 한 잔 더. 오늘 세 잔째다. 점심 전인데. 매주 반복되는 이 느낌 월요일마다 똑같다. RFP 폴더 여는 순간. 기대 반, 걱정 반. "이번 주는 대박 건 있을까?" "납기 지연 없을까?" "경쟁사가 먼저 들어간 건 아닐까?" 7개 중 2개 건지면 잘한 거다. 10개 중 1개만 클로징되면 성공이다. 그게 영업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 9시. RFP 폴더 여는 손가락. 8년째 떨린다. 익숙해지지 않는다.월요일이 시작됐다. 커피 한 잔 더 필요하다.